남 나라 /12-09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노코미스 2012. 10. 1. 13:39

 

9월 1일 (토요일) 오전 날씨:맑음

 

토, 일요일은 공식일정이 없으니 완전 자유롭다.

 

오늘은 오전에는 세계 3대 박물관중 하나인 루브르박물관, 점심식사후에는 노트르 담과 그 주변 관광을 하기로 한다.

우선 오전 일정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처음 루브르에 갔을때는 그 위치를 전혀 짐작할 수가 없더니

이번에 가서야 루브르가 파리 시내 중심가 1구에 위치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세느강 북쪽에 자리잡고 있으며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있기도 한 루브르 박물관은

영국의 대영박물관, 러시아의 에르미타슈미술관과 함께 세계 3대 미술관의 하나이다.

 

이곳은 한해동안 세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박물관이기도 하다

이날 우리가 너무 일찍 도착하였는지 아직은 한산하다 

 

 

 

루브르는 입구가 여러곳이 있는데 우리는 북문에 해당되는 '파사쥬 리슐리외 입구'로 들어간다.

 

어둡고 컴컴한 성문입구를 통과하니 박물관 정원 한가운데에

루브르박물관을 상징하는 유리 피라밋과 중세궁전의 돔이 오버랩되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루브브 박물관은 1190년에 바이킹의 침략을 막기 위한 요새로 지어졌었지만

16세기 중반 르네상스 양식의 궁전으로 재건축되면서 그 규모가 커졌단다. 이 중 사진 배경으로 등장하는 그랑 갤러리는

궁정 예술가들의 주거지 겸 아틀리에로 사용되었다. 이후 루이 13세와 14세는 이 궁에 서쪽윙을 추가하는 등

루이15세 때까지 증축이 계속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베르사유 궁이 건설되면서 왕궁을 그 곳으로 옮겨가게 되자,

1793년 궁전 일부가 중앙 미술관으로 사용되면서 루브르는 궁전의 틀을 벗고 점차 박물관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한다.

 

 

 

사진상으로 잘 보이지는 않지만 루부르 박물관은 튀를리 정원의 서쪽으로 큰 ㄷ자형으로

독립된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으며

그 건물들 한 가운데에 지금은 루부르의 상징이 된 유리 피라밋이 위치하고 있다.

 

유리 피라밋은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에 의해 추진된 ‘대 루브르 프로젝트’ 의 일환으로 건립되었고

1989년에 완공된 피라미드 건립공사는 에펠탑 건립당시와 마찬가지로
파리지엥들의 매우 거친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었다.

 

초현대적인 유리피라미드가 수백 년 된 고궁(古宮)과 과연 제대로 어울릴 것인가 하는 것이 그들의 걱정이었다. 

그런 걱정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에펠탑이 파리의 상징물이 된 것처럼

유리피라미드도 루브르 박물관의 중요한 상징물이 되어버렸다.

 

이런 것이 프랑스의 매력이고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 짐작에 독일이라면 이런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초현대작품은 초현대작품끼리, 고전은 고전끼리..

질서 정연하게..

 

그러나, 프랑스는 그런 것 없다.

이질적인 것들의 자유로운 조화..이것이 프랑스의 매력이다.

기존의 건물은 당대를 대표하는 건물로서 의미를 갖는 것이라면,

지금 짓는 것은 지금을 대표하는 건물로 짓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지금은 초현대적이라 걱정하지만 여전히 4~500년이 지난 후의 후손들이 볼 때는

또 다른 형태의 문화가 되어 있을 것이다.

상당히 합리적이면서 자유로운 발상이다.


 

만약에 옛 궁전터에 피라미드와 분수 등 현대적 부속물들이 없었다면

루브르 박물관이 다른 옛 궁전을 이용한 건물들과 차별화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유럽에는 옛 궁전을 이용한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널리고 널렸다. 내 눈에는 거기가 거기같고, 여기가 여기같다.

 

그런 점에서, 이런 현대적 부속물이 들어옴으로서 루브르는 옛 궁전들을 이용하는 다른 건물들과 차별화가 가능하게 되고

정말 고리타분한 박물관스러운 분위기에서 벗어나 명실상부한 예술의 공간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된 것 아닐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너무 주변환경에 도취되어서 즐기다보니 잠시 일행을 놓치는 해프닝을 벌이기도 하지만

다행히 다시 합류하여 그룹전용입구를 통하여 반지층으로 들어간다

 

들어가니,

댄 브라운의 「다빈치 코드」에서 "그녀의 입구를 지키는 칼날"로 묘사하고 있는 역피라미드를 만나게 된다.

그의 상상에 의하면, 현재 보이는 역피라미드는 빙산의 일각이며 지하에는 거대 피라미드가 뻗어있으며

성배는 그 피라미드속에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보았던 피라미드는 별 의미없는 하나의 조형물이었을뿐이었지만

다빈치 코드를 읽는 순간 피라미드는 루브르에 다시오고 싶은 이유가 되어버렸었다.

 

그러나 현지에 와서 확인하게 되는 사실은 그의 스토리는 그만의 것이라는 사실만 확인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다빈치 코드 이전과 이후는 확실히 다르다. 내용의 사실유무와는 별개로 다빈치코드에 등장하는 순간

루브르의 피라미드는 이전의 단순한 건축물에서 유의미한 문화로 변화되었기 때문이다.

 


 

아뭏든 그런 저런 이유를 다 떠나서

루브르가 현실적으로 유리피라미드를 설치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지하로 내려가면 알수 있다.

그것은 바로

'피라미드를 통해서 들어오는 지하공간(이곳을 '나폴레옹관'이라 함)의 채광효과'

 

피라미드를 통해서 들어오는 밝은 빛과 따뜻함이 너무 좋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지하에서 올려다보는 지상의 모습이 너무 멋지다!!

 

현재는 유리피라미드가 이러한 실용주의적 기능과 예술적 기능을 모두 다 잡은 걸작이라고들 말한단다.

 

 

 

역피라미드를 출발점으로 해서 박물관 투어를 시작한다.

루브르는 반지층에서 3층까지 전시실을 가지고 있는데 이곳 반지층에서부터 박물관 투어는 시작된다.

 

 

출발점에서 발을 떼는순간, 제일먼저 부딪히는 자칫 당황스러울 수 있는 부조물.

 

젊은 여인이 풍부한 가슴을 내어놓고 그녀의 젖을 먹고 있는 남자..

상당히 난감한 상황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의 도리'를 표현하고 있는 고전적 소재 중 하나이다.

 

화가 루벤스도 소재로 삼은 바 있는 로마시대의 효녀 이야기를 재현한 '시몬과 페로'이다.

 

남자가 시몬이고, 여자가 페로이다. 시몬은 페로의 아버지이고, 페로는 그의 딸이다.

시몬이 어떤일로 인하여 수감되었고, 처형일을 받아놓고 음식물도 반입금지된 상태이다.

 

물한모금 먹지못하여 뼈만 앙상하게 남은 수감수 아버지를 본 딸 페로가 모녀지간이라는 규범적 관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를 살리기 위하여 기꺼이 자신의 젖을 물려 아버지의 생명을 살리게 되었다는 스토리이다.

 

이 이야기는 로마의 역사학자 발레리우스 막시무스의 이야기에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그래서 일명 'Roman charity'라고 불리운다. 메시지는 관습에 앞서 '무엇이 인간으로서의 도리인가'를 생각해보라는..

 

 

 

복도를 지나니 아주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여져 있는듯한 느낌의 지하 공간이 나온다.

 

그곳이 중세 루부르의 자리였단다. 당시 루브르의 성곽 모양이 위와 같았고

매우 높은 담과 넓은 해자 등 견고한 요새로 지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성곽안쪽을 돌고 있다.

 

 

지하층을 돌고 1층의 고대 이집트 및 그리스 로마관으로 이동한 모양인데

어디가 어디인지는??

단지 가이드가 읽어주고 찍어주면 우리는 사진을 찍는다~소심

 

이 아르테미스 작품에서 가이드가 덧붙였던 내용은 진품과 모조품을 구별하는 방법을 설명했던 걸로~

 

 

 

고대 그리스 전시실로 들어가니

그리스의 황금비율로 무장된 절대기준의 9등신 미인들이 줄줄이 나열되어 있다.

 

미인중에 대표 미인 '사과를 들고 있는 아프로디테'

 

이 사과로 인하여 그리스의  불세출 영웅들을 다 죽이는 트로이전쟁이 시작되는 거 아니겠는가?

아뭏든 아름다움은 선이면서 독이다.

 

 

 

뭐라뭐라해도 비너스의 최고봉은 '밀로의 비너스'이다.

 

제작연대는 BC 150년경이며  멘데레스 강 유역 안티오키아의 한 조각가가 만든 것으로 추정되며,

1820년 에게 해의 밀로스 섬에서 파손된 채 발견되었다. 밀로스 섬에서 발견되었다해서 '밀로의 비너스'라 칭한다.

 

전체적인 구성은 4세기 코린트식이며 몸짓과 세련되게 주름잡혀 늘어진 옷자락은 매우 우아하게 보인다.

 헬레니즘 조각 전통의 고유한 특징들을 보여주며

그 이전의 걸작들과도 많이 닮아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녀가 아름답게 보이는 이유가 앞에서도 말했듯이 정확한 황금비율의 적용때문이란다.

황금비율 1:1.618

고전주의 미의 기준이다.

 

 

 

루브르 박물관은 늘 많은 사람들이 이동을 한다.

그런데 몇 개 구역에서는 그 흐름이 막힌다.

그 중 한 곳이 이곳이다. 

 

셜리관과 드농관 2층 난간에 위치해 있다. 

관과 관 사이 넓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다.

 

 

 

'사모트라케의 니케'

 

승리의 여신 '니케(Nike)'이다.

우리가 즐겨신는 운동화 브랜드 '나이키'도 여기서 유래한다.

 

2.75m크기의 대리석 조각상인 이 작품은 1863년 에게해의 사모트라케에서 발견되었고,

이것은 기원전 190년경 로도스섬의 사람들이 배의 선미를 장식하기 위한 장식품으로 사용한 것이란다.

 

아무리 미술에 문외한이라 하더라도 이 상을 보고 있으면 절로 감탄하게 된다.

탄탄한 날개자락을 바람에 휘날리며 금방이라도 승리를 향해 날아오를 것만 같은 느낌이 오지않는가~

 

에게해의 빛나는 햇살아래 배의 선미에서 당당히 뱃길을 인도하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정말 멋지지 아니한가? 이 여인을 의지하는 뱃사람들은 두려운 것이 없었겠다

 

그 여인의 표정은 어떤 표정이었을까..??

 

 

바로 옆의 아폴로관으로 향한다.

 

 여기에서는 뭘 봤지?  화려한 천정화와 역대 왕들의 초상화..

아, 그리고 다양한 공예품을 본 것 같은데, 그닥 기억에 남는 것은 없다. 

 

 

 

루이 14세가 사용했다던 왕관

저기에 박힌 돌들이 모두 진짜 보석이라는데..

 

그래도 그닥 탐나지는 않는다.

 

 

 

나는 왕관보다는 아폴로 관 창문으로 내다보이는 '예술의 다리'와 세느강에 더 눈길이 간다.

 

 

2층 회화관으로 가서 유명한 작품들만 건성건성 핑퐁한다.

'나폴레옹의 대관식' ,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제리코의 '메두사호의 뗏목' 등등

시대적으로 의미있는 작품들 중심으로..

 

 

 

열심히 설명하고 열심히 듣고..

 

 

역시 루브르의 최고정점은 '모나리자'이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그 작은 여성상 앞에 운집해 있다.

어차피 나야 그림에 큰 조예가 없는 사람이라 가까이서 본다하더라도 별 의미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갈수록 더 많이 모여든다. 그리고 미술관측에서는 바리게이트가 더 견고해졌다.

6년전에는 최소한 3중 바리게이트는 아니었다. 나는 그림 자체보다도 사람들의 이런 관심이 더 재밌다.

 그들은 과연 모나리자를 얼만큼 알고 몰려오는 걸까..?

 

사실은 거의 나같은 수준이 아닐까 싶다.

그 곳에 가면 그것이 있다니까..그것을 확인하는 수준이랄까?

 

최근에 이탈리아 피렌체의 옛 수도원자리에서 모나리자의 실제모델이 되었던 조콘다 가문의 여성의 유해를 발견했다는 보도자료를 읽은 적이 있다.

게다가 실제 얼굴모형을 복원하는 작업을 진행중이라는데..

정말 이 여인이 그 여인일지..조만간에 밝혀질 날이 머지 않은 듯하다.

 

한동안 그림의 여성이 다빈치의 연인이거나 어머니, 창녀, 귀족부인, 또는 다빈치 자신의 모습이라는 둥

다양한 추측과 가설들이 난무했었고,

그런 풀리지 않는 가설들이 이 작품에 신비성을 더하면서 매년 600만명의 관광객들을

루브르로 불러들이는 역할을 하였었는데,

 

하나의 미스테리가 풀리게 되면 그 신비주의 효과는 어떻게 변하게 될까..?

 

 

다시 1층으로 내려와 드농관의 조각관을 통해 출구로 나오게 된다.

 

 

뒤따라 나가는 길에 소중한 작품 하나 발견하고는 얼른 찍고..

 

안토니오 카노바의 1793년작 '에로스와 푸쉬케',

이들이 루브르에 있는 줄 몰랐다.

 

안토니오 카노바는 재작년 이태리 제노아 툴시에서 보고 너무 감동했었던

'막달라 마리아의 참회Maddalena Penitente'.의 작가이기도 하다.

이제야 이 둘을 연결지을 수 있게 되었다.

 

아뭏든, 지 작품에서는 에로스가 키스로 푸쉬케의 영혼을 잠깨우는 순간 영원한 사람이 시작된다.

정말 아름답지 아니한가..

 

그들의 애절한 사랑이야기와 새로이 시작되는 사랑의 이야기가 

이 하얀 석고상안에서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이렇게 우리는 3층까지 올라가지는 못하고 2층 회화관까지만 훓는 것으로 일정을 마치고

다시 처음의 출발점인 지하홀로 내려온다.

 

마지막으로 난간에서 우아하게 국빈모드로 포즈를 취해보기도 하고..ㅎ

 

 

루브르 박물관은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궁전을 미술관 건물로 사용하고 있으며, 소장된 미술품의 규모는 세계 최대이다. 원래 루브르궁에는 역대 프랑스 국왕들, 특히 프랑수아 1세, 루이 13세, 루이 14세 등이 수집해 놓은 방대한 양의 미술품이 소장되어 있었는데 프랑스 혁명 후인 1793년 국민의회가 그것을 공개하기로 결정함으로써 미술관으로 정식 발족하고 그 뒤로도 꾸준히 미술품 수집이 계속되어 오늘날의 대미술관이 이루어졌다. 현재, 무려 6만 m2의 공간에 3만 5,000점의 작품을전시하고 있다. 이 규모는 한 작품을 5초만 보고 작품사이를 걷는 시간을 2초씩 잡는 단순계산법으로 계산한다고 해도 무려 68시간이 걸리는 규모이다.

개관 이래 프랑스 미술의 중심적 구실을 하면서 전세계의 미술가나 미술 연구가 및 애호가들이 수없이 찾아들어 파리의 빼놓을 수 없는 명소가 되어 있다. 특히 젊은 화가나 조각가에게 거장()들의 작품을 직접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미술 발전에 기여하는 의의는 매우 크다. 또한 루브르미술관의 관장()이 전국의 공 ·사립 미술관 운영을 총괄하도록 되어 있어, 프랑스 미술관 행정의 총본산이기도 하다.

수집된 미술품은 고대에서 19세기까지의 오리엔트 및 유럽 미술의 모든 분야를 망라하고 있으며, 등록이 완료된 것만 해도 총 20만 점을 넘는다. 작품은 각 부분마다 연대 ·지역별로 분류되어 광대한 루브르궁전의 북동()을 제외한 거의 모든 건물의 각 층에 배치되어 있다. 회화 ·공예 부문은 2 ·3층에, 조각 부문은 1 ·2층에 진열하고 있다. 또한 19세기 인상파 이후의 회화 부문 역시 루브르미술관 소관인데 그 작품들은 '인상파미술관'에 전시하다가, 1986년에 완공된 오르세미술관으로 옮겨 전시 중이다. 정확히 1848년을 기준으로 이전의 회화는 루브르에서, 1848~1914년까지의 회화는 오르세에서 전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