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08. 14(목)
레지덴츠에 짐만 올려놓고는 늦기전에 바르트부르크Wartburg가는 버스를 탔다. 1시 30분버스를 이용했다.
바르트부르크캐슬이 먼줄 알았는데 시내내에 있어서 루터 동상앞에서 약 20분 가량소요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버스가 산길을 접어들었는데 느낌이 친숙하다. 마치 범어사올라가는 길처럼 보인다.
그런데 버스 종점 내려서 캐슬까지 올라가는 길 역시도 마치 우리나라 어느 경치좋은 산속에 지어진 절을 찾아가는 길과 느낌이 유사하다
우리나라의 절을 찾아가는 느낌과 유사하다라는 생각은 이곳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의 연령대를 보면서 더 확고해진다.
주로 중년이상의 노년층들이 주 관광객이다. 마치 우리나라 사찰관광의 주 고객이 중년 또는 노년층이듯이..
계단이 그렇게 힘겨울만큼 가파르거나 높은 것은 아니지만 중간에서 잠시 쉬면서 숨을 고른다.
저 계단끝에 서면 바르트부르크 성이 나온다.
여기서 바라보면 아이제나흐 시와 에르푸르트 구가 모두 내려다보일만큼 높은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다.
1080년에 이미 이 산은 요새화되었었고, 1217년에 죽은 튀링겐의 영주 헤르만 1세가 이 성을 다시 지었으며,
이곳을 포겔바이데 출신의 발터와 볼프람 폰 에셴바흐 같은 방랑시인과 음악가들이 자주 찾는 대저택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1485년부터는 이 성과 주변지역은 작센의 에르네슈티네 공작가(家)에 속하게 되었고,
작센의 선거후 프리드리히 3세가 1521년 5월부터 1522년 3월까지 바르트부르크에서 마르틴 루터를 보호하여,
그리스 원문으로 된 〈신약성서〉의 독일어 번역을 그곳에서 시작하도록 배려하여 독일 종교개혁의 시발점이 된 곳이기도 하다
들어가는 입구이다. 요새였던 흔적이다. 이 나무다리는 요새안쪽에서 도르래로 감아올리게 되어있고, 이 다리가 올라가버리면 외부와 완전히 차단이 되어버린다.
지금은 고정이 되어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무로 만들어진 토어에 난 낙서와 상처 그리고 부식된 쇠장식들이 몇 백년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입구에서 성안으로 들어와서 도시 토어쪽을 향해서 바라본 샷이다.
가장 입구에 위치한 밝은 브라운 지붕이 루터가 기거했던 방이다. 그러나 지금은 폐쇄되어 있고, 그의 흔적은 성안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높은 산꼭대기에 자리잡고 있어 하늘외에는 더 이상 거칠 것이 없다.
이 성벽을 끼고 저 뒤쪽으로 돌아가면 높은 망루로 올라가는 입구가 있다.
그리고 이 성벽을 끼고 군데군데 현대 조각작품들을 전시하여 과거와 현대를 양립하고 있는 독일의 문화정책을 본다
이 성벽군데 군데 이런 조그만 구멍이 나 있다. 아마, 과거에 요새로 이용했을 때 외적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기능을 했으리라.
지금은 평화로운 풍경을 담아내는 조그만 액자역할을 하고 있다. 이렇게 세상을 보는 방식은, 탁 트인 공간에서 막힘없는 대자연을 보는 것과는 다른 색다른 느낌이 있다
성벽을 끼고 전시되어 있는 현대 조각품..
독일예술가들이 인간을 보는 모습은 '사는 것이 너무 힘겹다~?'
역시 성에서 가장 마음이 편안한 곳은 이런 붉은 돌담벽이다.
아무 장식도 없이 그저 작고 큰 자연석들의 자연스러운 배치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이 성의 역사와 루터의 유물들은 따로 박물관 입장권을 사서 들어가야 하지만, 남의 역사라 별 흥미가 없어 바로 시내로 내려오기로 했다.
캐슬 아래쪽에 위치한 바르트부르크 호텔이다. 이 호텔은 주로 결혼을 하는 신혼부부용으로 이용되나보다.
내가 본 그 시각 웨딩슈트를 입은 쌍을 3쌍이나 보았다.
독일에서 처음보는 광경이다.
http://www.wartburg-eisenach.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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