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오모 꼭대기에서 내려오니 어느새 두오모 광장에는 오전무렵과는 달리 많은 관광객으로 가득차 있다.
오른편으로 마치 프랑스 파리의 개선문처럼 생긴 '비토리오 엠마뉴엘 2세 갈레리아' 입구가 웅장하게 서 있고..
두오모 앞 계단에 앉아 정면으로 마주보이는 광장 끝부분을 보면 '비토리오 엠마뉴엘 2세'의 늠름한 청동 기마상이 보인다.
비토리오 에마뉴엘 2세라면 1861년 이탈리아 통일과 1870년 이탈리아 왕국의 건국 영웅으로 알려져 있는 사람이다.
예전에 로마에 갔을 때 포로 로마노 앞쪽 광장에 당당하게 서 있었던 그의 모습이 새삼 떠 오른다.
이탈리아에서는 중요한 사람인게다.
어쨋거나, 이 주변에는 항상 사람들로 붐비고 있고..
그가 바라보는 방향을 중심으로 정면에 두오모가, 왼편에 대형 갈레리아가 있다.
이 건물은 1865년에 시작되어 13년만에 완성된 아케이드라고 하는데, 아케이드로 들어가는 입구를 보면
내부에는 거대한 아치형 유리지붕이 덮여있어서, 실내라도 언제나 자연채광을 받으면서 걸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너, 나 할것없이 이 유명한 쇼핑거리에서는 진열된 물건들을 보고는 그냥 스쳐지나갈 수가없다.
아케이드 양면으로 조성되어 있는 상점가를 기웃거리면서..느릿느릿 걸어올라가니..
아케이드 중간쯤에 이런 거대한 아라베스크 문양의 모자이크 바닥이 조성되어 있는 광장이 나온다.
그 광장에서 유독 한 쪽으로 사람들이 모여 있다.
무슨 일인가 하고는 가까이 가보니,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들 한번쯤은 황소 모자이크 위에 서서
바퀴를 도는 것이다. 그러면 옆에 있던 사람들이 함께 즐거워해주고..
사람들이 많이 흩어진 다음 보았더니, 황소의 주요부위를 중심으로 바닥이 패여져 있다.
이 곳을 축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돌았는지..
속설에 의하면, 황소의 이 부분을 축으로 한 바퀴 돌고 나면 소원이 이루어진대나 어쩐대나..^^
그 많은 여행객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용케도 이곳까지 찾아와서는 한바퀴씩은 돌아보고 간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근데, 뭘 빌었는지는..기억에 없다..ㅠ.ㅠ
또 다른 한쪽에는 로마의 건국신화에 나오는 늑대와 로물루스/레무스 형제이야기가 새겨져 있고..
다른 한쪽에서는 이국의 모습들을 하나라도 놓치지 않고 배우고 싶어하는 여행자들과
자신을 눈에 띄게 드러내 놓고는 혼자 여유를 즐기는 히피스러운 여행자들이 어울어져 있다.
내 눈은 여측없이 저런 짐승남을 보면 절대 놓치는 법이 없고..^^
그래도 어쩌랴..
길을 걷는 노마드는 어쩔 수 없이, 순간적인 이끌림 조차도 그것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을..
그 순간의 감정은 그 곳에 둔 채..
또 길을 걷는다.
슬슬 걷다보니 아케이드 내 한 서점에 걸려있었던 이태리 지형도
이태리도 그닥 좋은 지형을 타고나지는 못했다. 밀라노에서 베네치아에 이르기까지 북부 일부지역만이 평지를 가지고
있을 뿐, 다른 지역은 모두 산간지역이다.
이런 악조건을 가진 이태리를 한 때 점령했던 한니발도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불쑥 든다.
아이들의 흥미와 관심을 얻어내도록 디자인되어 있는 입체동화도 있고..
Bocca라는 이름을 가진 이 서점은 1775년에 문을 연 긴 역사와 전통을 가진 책방이란다.
소형 갤러리나 그림샵도 있고..
멋진 모자 전문샵에..
금속 아트샵에 이르기까지..
천천히 구경하면서 반대쪽 광장으로 나가니 공원에 눈에 익은 동상이 하나 나타난다.
어~ 누구셔요..?? 레오나르도 다빈치 할아버지네~
중세시대에는 이태리가 도시 국가였던 관계로 예술가들이 각 도시를 중심으로 활동을 하였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원래 토스카나 지방의 산골마을 빈치라는 곳에서 태어나 14살이던 1466년부터 밀라노로 옮겨가지 전인
1481년까지 토스카나의 수도였던 피렌체에서 활동을 하다가
1482년 밀라노의 스포르차 가문의 화가로 초빙되어 가면서 제1의 밀라노 시대를 만든다.
밀라노에서 그의 역할은 화가로서뿐만 아니라 조각가, 건축가, 기사 등으로 전천후 르네상스인의 모습을 보이면서
스포르페스코성을 증개축하는데 관여하기도 하고, 그의 유명한 작품인 <암굴의 성모>와 <최후의 만찬>을 이 시기에
제작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1481년부터 99년까지 거의 18년동안 당시 밀라노의 통치자였던 스포르차가의 '루드비코 일 모로'를 위하여 봉사하다가,
1499년 에스파냐가 밀라노를 침략하여 스포르챠 가문이 외국으로 추방당하면서
그도 함께 밀라노를 떠나서 1500년에 다시 고향 피렌체로 돌아가지만
1506년에 다시 밀라노로 돌아와서 1513년까지 프랑스왕의 궁정화가가 되어 제2의 밀라노 시대를 연다.
그러다가,
1516년에는 아예 프랑스왕 프랑수아 1세의 초청으로 프랑스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6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고
기록되고 있다.
그의 활동기간 중 그래도 밀라노에서 기간이 가장 길었으니 이곳이 그의 제 2의 고향인거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동상이 있는 스칼라 광장에서 도로 건너편으로 건너다보면 바로 맞은편에 스칼라 극장이 보인다.
세계적인 오페라 하우스로 1778년에 완성되었다고 하니..
이 나라는 어떤 사소한 건물들도 그 역사가 보통 2-3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니 기가 질린다.
나야 음악적 조예가 그닥 없으니 통과~
스칼라광장과 스칼라 극장 사이에 나 있는 길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도로 양편으로 웅장한 중세건물들이
그대로 남아있고, 그 건물들은 오늘날 모두 관광객을 맞이하는 호텔, 레스토랑, 로드샵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특히, 그들의 윈도우 디스플레이 솜씨는 얼마나 독창적이고 창의적인지 나에게는 참 좋은 구경거리이다.
그들은 옷을 파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동심을 판다(?) 아니 동심을 '끌어낸다'는 것이 더 낫겠다.
중앙로로 올라오다가 어느지점에 오면 밀라노의 가장 번화한 패션 거리 나폴레옹 거리가 나온다.
이 거리에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브랜드 샵들이 밀집되어 있는 거 같다.
근데 이 거리 이름이 왜 하필이면 한 때 이태리를 점령했던 적이 있었던 침략자 이름으로 표기되어 있을까?
우리나라라면 있을 수가 없는 일일 텐데..
찾아보니,
나폴레옹과 이태리는 단순히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상극관계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뭔가가 있다고 한다.
나폴레옹이 침략자이기는 했지만, 오히려 지방색으로 갈갈이 찢기고 황폐화되어 기진맥진해있던 18세기 이탈리아의
입장에서는 당시 그의 혁명이념이 그들에게 잃어버린 이탈리아 문화와 혼을 일깨우게 하고,
시민의 권리와 책임, 민족적 정체성을 지닌 이탈리아 통일의 꿈을 심어주게 한 사람이 된다.
더불어, 나폴레옹 역시 자신의 출신지가 이탈리아이고 그의 이름도 사실은 이탈리아식 이름이어서
어렸을 때부터 이탈리아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애착이 있었고,
비록 침략자였다고는 하나, 그런 애착이 이탈리아인들의 민족혼을 일깨우는데 많은 관심을 갖도록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러니
나폴레옹과 이탈리아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지배자와 피지배자간의 갈등관계로만 생각할 수 없는
각별한 의미를 가진 관계라는 것을 이해할 수 있겠다.
..
그래, 이제 거리탐색은 이정도로 해 두고,슬슬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보도록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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