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김태용, 출연: 탕웨이, 현빈, 김준성, 김서라 개봉:2011-02-17
"왕징, 왜 남의 포크를 사용하고선 '미안하다' 사과한마디 하지 않는거야, 왜~ 왜~ 왜~?"
남편을 죽인 살인죄로 장기 복역중인 재미중국인 '애나~'
그동안 면회도 연락도 거의 없던 형제들로부터 엄마가 돌아가셨으니 장례식에 참여하라는 연락이 온다
덕분에 애나는 교도소로부터 3일간의 휴가를 얻게 된다.
7년만에 교도소의 담장 밖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는 애나의 이 표정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슬픈것인지, 무감각한 것인지..
어떠한 회한도 슬픔도 보이지 않는 표정으로 시애틀 행 버스에 몸을 싣고 차창을 향해 앉았을 때..
뜬금없이 다가오는 목소리..'저기요'
"30달러만 빌려주실래요~"
올려다보니
머리에 기름 반지르르하게 바르고 코트깃 바짝 세우고 나름대로 멋을 낸 아름다운 청년이지만
현재 애나의 상황에서는 뜬금없는 손님일뿐이다.
절박한 상황에 있는 불쌍한 인간하나 구제한다는 기분으로 지갑을 열어 차비를 빌어주고는
다시 그녀의 시선은 창밖을 향함으로서 모든 관심을 끊어버린다.
자신을 '훈'이라 소개한 그는
자신의 시계를 그녀에게 저당잡혀놓고는 자신의 연락처를 그녀에게 쥐어준다.
3일이라는 제한된 시간속에 갇혀있는 그녀에게
다른 사람과 연결되는 이런 상황들은 아무 의미가 없다.
차에서 내린 그녀는 주머니속에서 잡히는 카드를 꺼내어 가볍게 한번 내려다보고는 쓰레기통에 넣어버린다.
그렇게 그와의 만남은
귀갓길에서 일어난 하나의 짧은 해프닝으로 끝나버리는 듯 하더니..
오빠와 언니가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오기는 했으나,
그곳에는 오랜만에 만나게 될 여동생을 기다리는 따뜻한 가족이 있기보다는
엄마의 죽음으로 남게 될 유산과 애나의 지분을 그들에게 위임한다는 애나의 동의 도장을 기다리는
현실에 각박한 형제들이 있을 뿐이었다.
착잡한 심정에 정원으로 나갔더니
옛날부터 가깝게 지냈던 이웃집 오빠, 왕징이 그녀를 맞아준다. 반갑긴한데 아주 어색한 표정으로..
'오랜만이군~, 잘 지냈어? 많은 시간이 흘렀어, 그동안 모든 것이 너무 많이 변했어"
그래, 세상은 너무나 많이 변해 있었다.
내 가족도, 이웃도, 윈도우에 내걸려있는 옷들도..
그러나, 그녀는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교도소에서 생활은 애나의 몸만 감금해 놓은 것이 아니라 그녀의 시간도 함께 감금해두었다.
"나에겐 변한게 아무것도 없어~"
난 7년전의 애나이고, 내가 걸치고 있는 이 코트도 7년전의 그것인데..
세상은 모든 것이 너무나 많이 변해 있다.
현실과 자신과의 사이에 가로놓여있는 거리감에 혼란스럽고 착잡해하는 애나앞에 다시 '훈'이 나타나고..
빌린돈을 갚으려는 '훈'에게 그녀는 왜 그렇게 물었을까..?
"Do you want me?"
그녀의 목소리는 사막의 모래만큼이나 건조하고 무겁게 내려앉아 있다.
어쩌면, 그와의 관계를 통해서 모든 것이 변해버린 이 시간과 연결고리 하나 만들고 싶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남편에 대한 나쁜 기억들이 결국은 '훈'의 신체적 접촉을 거부하게 만들고..
모텔에서 고객을 만족시키지 못한 '훈'은 대신 그녀의 여행 동반자가 되어서 그녀를 행복하게 해 주려 한다.
"그래도 옆에 누군가가 있는게 좋지 않아요?"
그녀들이 좋은 남자가 되어달라면 좋은 남자가 되고
나쁜 남자가 되어달라면 나쁜 남자가 되어 주는 것이 직업인 그는
이미 '애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다.
누구에게도 몸과 마음을 꼭꼭 닫고 있는 '애나'를 위하여 '훈'은
시애틀의 시티투어를 신청하여 그녀의 분위기를 환기시켜주기도 하고 ..
중간중간 '하오'와 '화이'놀이를 통하여 그녀의 역사를 끌어내기도 하고..
상상극을 통하여 그녀의 감정을 조금씩 조금씩 이끌어낸다.
이런 과정을 통하여 그녀의 7년동안 막혀있었던 감정의 통로가 조금씩 열려가기 시작하고,
내면의 소리들을 낮으마하게라도 토해내게 되면서 그녀의 표정은 한층 밝고 가벼워지기 시작한다.
그녀의 억눌려있었던 세상에 대한 억울함, 즉, 형제들의 무관심도 그렇지만
제일 억울한 것은,
남편을 죽여가면서까지..날 살인자로 만들어가면서까지 그의 품에 안기고 싶었던 남자, 왕징~
내가 살인자라는 낙인이 찍힌 채로 7년이라는 시간을 교도소에 저당잡히고 있는 동안에
자신은 정작 다른 여자와 결혼하여 아이까지 낳아서 행복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 남자..
그 남자로부터 이 상황에 대해 '미안하다'라는 말 한마디 정도 듣고 싶었는데,
'미안하다'는 커녕 뭐? '세월이 많이 흘렀고, 너무 많은 것들이 변했다'고~?
그래서 뭐~?, 그것이 어쨋다고..그러면 나한테 '미안하다'말 한마디 안해도 돼~???
엄마의 장례식에 친구자격으로 참석한 '훈'은
직감적으로 '왕징'이 애나의 이야기에 등장했던 그녀의 첫사랑임을 직감하고는 괜히 시비를 건다.
"왜 남의 포크를 사용하고는 미안하단 말한마디 안하냐고..?"
그리하여 결국은 애나에게 '미안'하단 말을 하도록 만들고..
그말을 들은 애나는 처음으로 목소리를 높여서 통곡을 한다. 7년동안 쌓여있었던 모든 감정의 응어리들이 통곡을 통하여 풀려나온다.
장례식을 마치고 다시 교도소로 복귀하는 그날도 시애틀의 안개는 한치앞을 볼 수 없을만큼 짙게 내려앉았다.
결국, 얼마가지 않아 시애틀의 안개때문에
버스는 더 이상 운행을 못하고 안개가 걷힐 때까지 가까운 휴게소에서 쉬어가기로 한다.
표정이 한층 편안해진 애나가 따뜻한 커피한잔으로 몸을 녹이고 있을 즈음
어딘가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 '훈'이 그녀에게 다시 자신의 시계를 채워주며 말한다.
"당신이 나오는 날, 우리 이곳에서 만나요~"
그리고는 이 영화의 가장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안개짙은 휴게소에서의 이별의 롱~~키스!!
그들의 키스는 상황의 애절함만큼이나 길게 이어졌고,
길었던 만큼 돌아서는 발걸음이 안타깝고 무겁다.
그리고, 짙게 내려앉아 시애틀을 감싸고 있는 안개는 '애나와 훈'의 미래까지도 짙게 감싸고 있어서
그들의 미래조차도 '아름답긴 하지만 뭔가 분명해보이지 않음'을 암시하는 듯하다.
무슨 일인진 모르겠으나,
그에겐 일이 생겼고, 버스는 떠나야 한다.
버스로 향하는 애나의 발길 뒷편으로 불안한 경찰차 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설마 그것이 '훈'과 관련된 일일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그녀의 의무연한이 끝나고 출소를 하는 날,
'애나'는 안개속같았던 사흘동안의 사랑을 확인하기 위하여
그리고 그 결실을 위하여 그들이 약속했던 그 때 그 장소로 향하고..
헤어지던 그날과는 달리 안개한점없이 맑고 햇살이 따뜻한 창가에서
끊임없이 오가는 사람을 주시한다.
그리고는
햇살이 기웃기웃 기울어간다는 느낌이 들 만큼 많은 시간이 흐른 즈음에,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낮으마한 애나의 목소리와 함께 앤딩 크레딧이 올라가고..
하지만 끝내 관객들의 눈에 '훈'은 보이질 않는다..
...
스토리와 영상은 참 아름답건만
2시간짜리 분량을 빼기에는 구성이 너무 단조롭다는 느낌..
그리고 젊은 배우들이 표현하는 감성은 내 나이대의 사람들이 보기에는 너무 여리다. 그래서 좀 심심했다.
그럼에도, 앞으로 정말 기대되는 큰 여배우 하나 보는 재미로 지겹지는 않았다. 탕웨이~
우리나라 여배우들은 죽었다깨도 못할 그녀의 연기..
이미 '색,계'에서 그녀의 가능성은 짐작했었지만 불과 2-3년 상간에 이정도로 발전해 있을 줄 몰랐다.
어쩌면 저렇게 차분하고 긴 호흡으로 연기할 수 있을까,
어쩌면 저렇게 깊고 텅빈 눈빛을 연기할 수 있을까,
어쩌면 저렇게 투명한 목소리로 다양한 감성을 표현할 수 있을까,
어쩌면 저렇게 표정하나 움직이지 않고 짙은 우수를 연기할 수 있을까?
대단한 배우이다.
한 마디로 이 영화는 탕웨이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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