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라 /가락국 기행

신어산 자락의 가락고찰 ' 은하사'이야기

노코미스 2011. 10. 16. 23:39

 

요 며칠

'가락고찰'이라 일컫는 사찰을 몇 군데 방문하게 되면서 고대 가야와 허 황옥이란 인물에 대해 호기심이 충만해진다.

해서, 이전에 방문했던 사찰에서 얻은 정보를 기초로 하여 가락 고찰이라 일컬어지는 사찰을 더 방문해보기로 한다

우선 주변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은하사'부터 찾아본다.

 

허 왕후의 오빠 장유화상이 지은 절이라 알려진 절이다. 물론, 일반인들은 '달마야 놀자'의 촬영지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은하사는 찾아가기는 어렵지 않다.

김해 인제대학교를 감싸안으면서 올라가다가 보면 가야랜드 들어가기 직전 삼거리에서

우회전 했다가 바로 다시 좌회전하여 산길로 접어들면 된다.

사찰 입구까지 차도가 잘 닦여있어서 찾아가기는 쉽다.

 

만약 등반을 원한다면, 사찰입구 주차장에 주차를 한 후 등반을 할 수도 있다.

난, 그냥 관광객..

 

 

 

굵직굵직한 돌덩어리들로 조성된 돌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불이문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나무아미타불'이 새겨진 돌 비석이 현세의 보살들을 맞이한다.

 

 

 

 나무아미타불 입석 바로 앞에 연못이 조성되어 있고..

신어교를 지나야 본당으로 들어갈 수 있다.

 

 

 

 

어리연꽃과 수초로 아름답게 꾸며진 연못 한 가운데에 관음보살상이 서 있다.

벌써, 이 사찰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근래에 미학적 안목없이 무조건 양적으로 확장하려는 사찰들과는 달리 전체적인 분위기가 억지스럽지 않다.  

 

 

 

여전히 굵직 굵직한 돌계단을 한번 더 올라야 한다.

좀 힘들긴 하지만 획일적인 대리석 계단보다 돌계단이 자연과 잘 어울린다는 점에서 더 좋지 않나..

 

 

 

본당을 들어서니 바로 '범종루'라 쓰여진  종각이 보인다.

..

그러구 보니 요 며칠 다녔던 사찰에는 모두 천왕문이 없다. 사천왕상을 지나지 않고 바로 경내로 들어온 것 같다.

은하사는 조계종 범어사 말사로 김해지역에서는 제법 큰 절에 속하는데 왜 천왕문이 없을까..?

 

 

 

여하튼..그건 그렇고..

종각이 다른 사찰의 그것보다 웅장하고 듬직하다.

이유를 찾아보니 기둥때문이다.

 

종각을 바치고 있는 기둥이 무슨나무인지는 몰라도,

굵고 울퉁불퉁한 표면이 마치 운동 열심히 한 청년들의 단단한 근육을 보는듯한 독특한 느낌을 준다.

 

무슨 나무인지 검색을 해 보니

어떤이는 싸리나무, 어떤이는 메타세콰이어..

확신은 서질 않지만 둘 중 하나라면 싸리나무보다는 메타세콰이어에 한표~

 

 

 

 

'신어산 은하사 범종'이라 새겨져 있다.

 

 

종각 입구에는 이빨이 날카라운 특이한 형태의 새 3마리가 서로 마주보고 있다.

종각 들어가는 입구 교각에 좌우로 아마도 2마리씩 마주보도록 앉혔던 것 같은데

오른쪽 입구의 교각이 무너져 버려서 지금은 3마리만 남았다.

 

조각된 새의 상태가 벌써 삭아내리고 색깔도 퇴색되고 해서

조성된지 오래되었을꺼라고 추측했었는데..나의 추측은 빗나갔다.

원주실 보살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이 종각은 근대에 들어와 조성한 것으로 그 시기가 얼마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이리 삭았을까..?

옛부터 사찰이나 집을 지을 때 소나무를 쓰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듯도 하다.

아뭏든 이 종각은 소나무를 사용하지 않은 건 확실하다.

 

 

 

 종각에 목어를 함께 두곤 하는데

은하사의 목어는 다른 사찰의 목어와는 그 모습이 다르다. 머리 부분이 용머리이다.

 

용머리를 한 물고기는 은하사 곳곳에서 발견된다.

 

 

 

 보수공사를 하거나 증축을 하고 남은 자재들을 쌓아두고 있는데

그 세워둔 나무 둥지에서 이끼와 작은 소나무가 자라나고 있다. 죽은 나무둥걸에서 새로운 생명이 싹트는 생명의 경이로움을 본다.  

 

 

 

 

사찰내에 있는 나무 둥걸들이 이 사찰의 연륜을 말해준다.

 

그 규모는 소박하고 작으나..

곳곳에 서 있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결코 이 사찰이 만만한 절이 아님을 보여준다

 

 

 

 아마 신어산도 무척산처럼 돌산인가보다..

 

사찰내의 벽과 계단들이 거의 석조로 이루어져있다.

불국사처럼 자로 잰듯한 정성은 없지만, 이는 이 나름대로 자연석이 갖는 아름다움이 있다.

 

 

 

 따뜻한 가을 햇살아래서 공양하는 보살들의 모습도 하나의 풍경이다.

 

 

 

범종루를 지나 설법전 앞에 서니 '대웅전'의 전면이 보입니다

신어산과의 조화가 멋드러집니다.

 

 

 

 이리 저리..왔다리 갔다리 하면서

전체적인 느낌을 느껴봅니다.

 

주어진 땅에 적절하게 잘 지어진 절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크지도 작지도 않고..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5층 석탑은 대웅전 아래마당 오른편으로 조성되어 있다.

 

원래는 탑 사면에 그림이 음각되어 있었던 거 같은데, 모두 마모되어 버렸다.

조각이 얕아서 그런건지, 아님 오래되어서 그런 건지..

 

은하사의 다른 부속품들에 비해서 탑은 다소 부실해 보이는..

 

어떤 이유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어떤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궁금한데 누구에게도 설명을 들을 길이 없다.

 

 

 

 

돌담아래쪽에서 신어산을 향하여..

 

오늘,

1박2일에서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교수님이 경주남산문화재 답사여행을 함께하면서

미학적 요소 중 하나로 '장소성'을 꼽는 걸 보면서..

 

신어산 자락과 어울어지는 '은하사의 장소성' 역시 절묘하다는 생각을 해 봤다.

 

 

 

 '장소성'도 중요하지만 '시간성'역시 중요한 미학적 요소가 아닐까..

 

오랜 고목의 이파리 사이로 언뜻언뜻 비치는 전각의 모습은

시간성과는 거리가 먼 현대적 건축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

 

 

 

 '명부전'쪽에서 바라다 본 '대웅전'

어느 편에서 보더라도 어울어짐이 좋다. 

 

 

 

 명부전 반대편 방향에서 바로 본 '대웅전'

 

 

 

대웅전 벽에 그려진 불화를 살펴보니 오른편 옆문 서까래 아래쪽으로 이런 그림이 있다.

아마도 이 건물의 건축에 대한 이야기이리라..

 

이 '은하사 대웅전'은 경남 유형문화재 제 238호로 지정되어 있을만큼 유서깊은 건축물이다.

최초 창건은 가락국 수로왕때 장유화상이 지었다고 전해지며 당시 이름은 서림사였다고 한다.

(아마 당시에는 인근에 동림사라고 하는 절도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내생각)

그러나, 임진왜란 때 절 건물 전부가 소실되어 현재의 대웅전은 인조 7년(1629년)에 중수하고

효종1년(1649년)과 순조1년(1801년)에 한번씩 더 보수되었다고 기록되고 있다.

 

그리고 최근에 와서는

대웅전의 주요 구조부가 부식되어 있어 2003년 전면해체 보수 작업을 시작하여 2004년 말에 보수 완료하였으며

대웅전 내외부에 그려져있는 벽화는 2004년 도유형 문화재로 추가 지정되어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으며, 현재 벽화는 원형을 모사한 것이다.

 

 그렇다면,

위의 벽화는 최초 창건자인 장유화상이 도면을 들고 절을 짓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것인가..

 

 

 

 단청의 색감도 다른 절에 비해서 부드럽고 우아한 느낌을 주기도 하고..

뭔가 편안한 느낌이 있어서 전체적으로 눈여겨 쭉~ 둘러보는데

또 신기한 것이 눈에 뜨인다.

 

처마아래 서까래 목판에 또 저래 요상한 그림이 즉, 범종루 목어와 같은 형상의 물고기 그림이 그려져 있다.

이 그림은 법당 안에서도 발견된다.

 

 

 

 부처님 머리 위쪽 처마단에 저런 요상스런 물고기 그림이 있다.

역시 몸통은 물고기요, 머리는 용인..

 

나는 오늘 사실상

은하사에서 '쌍어문'을 찾아서 이 절이 가락고찰이라는 확인을 하고 싶었고..

그 쌍어문양과 허왕후와의 인도 전래설과 얽힌 전설을 좀 더 풀어보고 싶어서 찾아 온 것인데

찾고자 하는 '쌍어문'은 없고 계속해서 요 요상하게 생긴 물고기만 나타난다.

 

원주실에 가서 이 물고기가 무엇이며 어떤 의미인지 물었더니 보살님도 잘 모른단다.

다음에 한번 더 들러서 주지스님께 직접 여쭤보라며 조언을 해준다.

 

혼자서 내려오면서 곰곰히 생각해본다. 신어산은 왜 신어산이라 했을까..와 함께.

아, 혹시 이것이 신어산(神漁山)의 상징인 신어(神漁)가 아닐까..??

역시 혼자 생각할 뿐이다.

 

우리나라 사찰들은 많은 상징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스토리로 만들어내질 못한다.

은하사 역시 마찬가지다. 많은 상징이 있음에도 스토리텔링이 없다. 많이 아숩다~

 

 

 

 궁금함을 그대로 끌어안고는 옆의 '삼성각'으로 발길을 옮긴다.

호랑이랑 같이 있는 산신령님과 여러 신령님들이 계시고..

 

 

 

방 입구에는 이 절을 최초 창건했다는 '장유화상 영정'이 걸려있다.

'월씨국래가락국장유대화상지조' 즉, 즉, 월지국에서 온 가락국 장유대사의 얼굴이라는 의미인데..

 

누이인 허 황후는 아유타로부터 왔다하고, 오라비인 장유대사는 월지국으로부터 왔다하고..??

역사적 허구에서 발견되는 틈새같은 거..

 

 

 

오래된 고목과 어울어지는 산신각 뒷모습..

 

 

 

아기의 사찰 나들이..^^

 

...

지난주, 모은암 들른 후부터 가락고찰에 대한 관심이 부쩍 늘었다.

허왕후와 장유화상, 가락고찰간에 얽힌 설화가 재밌다.

그래서 여기저기 흩어져있는 가락 고찰을 순례하고 그것을 정리해보고 싶은 마음이 급 동한다.

 

그러나, 마음만 앞설뿐 눈에 잡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답답한 마음에 집에 들어오는 길에 책방에 들러서 '가야사'한 권을 사들고 들어왔다

가야사가 갈수록 흥미로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