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은암'에서 '부은사(父恩寺)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는 바로 '부은사'를 찾아 나선다.
정확한 위치도 모른 채, '삼랑진'에 있다는 말만 듣고는 무작정 삼랑진 방향으로 내달린다.
생림에서 삼랑진을 가는 것은 어렵진 않다.
김해에서 타고왔던 58번 국도를 타고 계속 직진하면 10여분이면 도착할 거리에 있다.
생림과 삼랑진은 서로 인접해 있는 마을이다.
삼랑진으로 향하는 국도변에서 보는 황금들판은 나에게 있어 기대치 않았던 또 하나의 선물이었다.
황금들판은 이중적 감정을 갖게 한다.
한편으로는 풍요를 생각케하고, 한편으로는 쓸쓸함을 느끼게 한다.
특히나,
한잎두잎 나뭇잎을 떨구어가는 가을나무를 배경으로 할 때면 더더욱 더 그렇다..
거멓게 변색되어가는 사쿠라 나무 가지를 배경으로 노랗게 펼쳐져 있는 가을들판의 이중적 분위기에 취해서
도로변에 차를 세우고는 한동안 먼곳을 향한다.
가을하늘은 텅 비어있어도 아름다운데, 나의 마음은 비면 빌수록 왜 이렇게 아플까..
다시 차를 몰아서 어느 지점엔가 이르니, '부은사'들어가는 입구표시가 보인다.
간판을 보고 좁게 뻗어있는 산길을 무조건 박차고 올라가본다.
제법 올라가니 '천태산 부은사'표지석이 보인다. 이제 다왔나보다..
단지, 부은사가 삼랑진에 있다는 것만 알고 왔건만,
실제로는 삼랑진에서도 4Km를 더 가야하는 천태산 산기슭에 위치해 있다.
차를 내리려 하니, 다시 조금 더 올라가라는 표지판이..
5m 정도 더 올라가니 주차장이 나타나고..
모은암에서의 감동이 있었던 관계로, 부은사의 분위기도 비슷할 거라 생각하며 상당한 기대를 가지고 위를 올려다본다.
우선, 수령이 만만해 보이지 않은 은행나무 한 그루가 한 눈에 들어오고..
그러나, 사찰의 분위기는 어째 '모은암'과는 상당히 다르다.
'모은암'이 상당히 '정'적이고 '영'적이며 '탈 세속적'인 분위기가 있는 사찰이라 본다면,
'부은사'의 첫인상은 다소 현대적이거나 다소 세속적인 느낌으로 와 닿는다.
아마도 종무소의 콘크리트 건물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가..??
그러나, 은행나무의 자태로 보건데는 이 사찰의 역사가 만만치는 않을 듯해 보인다.
우선, 매력없는 종무소 건물을 지나서
그 뒤편에 있는 전통사찰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전각으로 다가가 본다.
'천불 법당'이라는 편액이 붙어있다.
살짝 들여다보니
정면 가운데 '비로자나불', 좌우로는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다른 부처님이 안치되어 있고
그 주변으로 천불을 모시고 있다.
내 눈에는 다른 절이나 특별히 별 다를 바 없어보여서 그냥 바깥대들보에서 합장을 하고는 내려온다.
2000년이라는 역사를 가진 고찰이라는데..
뭔가 특별한 유래나 사연이 있지 않을까하고 주변을 둘러보니, 부은사의 유래에 대한 입간판이 세워져 있다.
설명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약 2000여년전 인도의 아유타 국의 왕자 보옥(장유화상)과 공주 황옥이 부왕의 불교포교의 뜻을 받들어
해로를 통하여 동방을 향하여 해동에 이르니 때는 바야흐로 가락국 김수로왕 때였다.
수로왕은 장유화상을 국사로 받들고 황옥을 왕비로 맞으니 이 땅에 불법 수용이 시작되었다.
서기 42년에 가락국을 창건한 수로왕이 부모를 그리면서 부은암을 창건하였다고 전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그의 세자 거등왕이 수로왕의 망극하신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서기 200년경에 창건했다고도 전하나
유구한 세월이 지나간 지금 자세한 창건년대는 알 수 없으나 거등왕이 창건하였다는 설을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으며
모은암, 서림사, 자은암, 칠불암과 더불어 우리나라 최초의 불교성지이며 또 세간 번영의 근간인 효(孝) 법문을 담은 보찰이다.
중략..
본 암은 임진왜란 때, 전화에 의해 소실된 지 200여년이 지난 철종 11년(1860년)에 복원이 이루어졌고,
1960년에 현재 본 사지가 아닌 아래 사지에 극락전, 요사채, 정각 등을 복원했다가..
1930년 주원택 거사가 약초를 채취하다가 현 사지에서 석조 아미타불 좌상을 발견함으로서
2008년에 현 사지에 옛 가람을 재현하는 중창불사를 이루어 옛 가락국 전통사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이후 생략..
이 설명에 의하면
부은사는 허왕후와는 직접 상관있는 절은 아닌 모양이다.
모은암에서 들은바에 의하면, '부은사'를 허왕후가 아버지 은혜를 기리면서 지은 절이라고 했는데
사실은 그것이 아니라
가락국의 2대 왕인 거등왕이 아버지 수로왕의 은혜를 기리면서 창건한 절이라는 거다.
그렇다 해도 어쨋거나
장유사, 성주사, 서림사(은하사), 해은사, 자은암, 칠불암 등의 (주로 '은'자 돌림 사찰들^^)은
우리나라의 초기불교의 성지들이라는 건 변함이 없다.
이 사찰이 2000년 가락고찰이라고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이 절에 남아있는 요 '요니'라고 하는 석물 때문이라는데..
'요니'는 인도 힌두교의 시바신을 상징하는 맷돌모양의 석물인데..
본 당에 있는 이 요니의 석질이,
인도에서 가져온 허 왕후 릉앞에 세워진 파사석탑의 재질과 같은 것으로 봐서 이것 역시 인도에서 가져온 것이 분명하다 보고,
그것으로 본 절의 최초 창건 연대까지 짐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 천불법당 자리에서 발견한 '석조 아미타불 좌상'을 보고파서 어디에 있냐고 물었더니,
종무소로 들어가 보란다.
법당 아래쪽의 콘크리트 건물이 종무소이다. 그닥 느낌이 좋진 않지만 들어가 본다.
가정집 거실같은 곳의 한켠에 아미타불을 본존불로 모셔놓고 그 옆으로 대세지보살과 관세음 보살을 협시보살로 두고 있다.
아마도 '극락전'의 개념으로 꾸며진 공간인 듯 하다.
가운데 부처님이 현 천불법당 자리에서 발견하게 된 '석조 아미타불 좌상'이다.
이 아미타불은 이조 광희 27년(1688)에 경주 불석으로 조성되었고, 2009년에 경상남도 유형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단다.
근데, 왜 법당에 모셔지지 않고 종무소 내에 모셔져 있을까..?
불상을 사유화하고 있다는 느낌이 살짝 풍기는 것이 뭔가 미심쩍다.
종무소에 살짝 물어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부은사는 종파가 다른 사찰과는 좀 다르다. '태고종'이란다.
다른 종파와 어떻게 다른지 물었더니..
조계종 사찰은 개인이 소유하지 못하는 데 반해,
태고종 사찰은 거의 개인사찰 개념으로 운영된단다.
그래서 종무소 내로 들어가니 거의 일반 가정집 분위기가 나는 것이 다소 낯선 느낌을 풍기는 거구나..
어쨋거나 천불 큰 법당을 지나 뒷편으로 가보니 '영산전'이란 전각이 있는데,
가까이 가니 웬 사찰의 개가 그렇게 사납게 짖어대는 건 또 처음이다.
개도 개지만, 전각의 문을 열어보니 모든 문이 잠겨있다. 왠 사찰이 이렇게 폐쇄적일까하는 느낌도..
포기하고 옆으로 나오니 '원효대사와 사명대사 수양 석굴, 마고 석굴 150m->'표시판이 보이네..
이거 또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선사인 두분이 아닌가..그 분들이 수행하던 석굴이라는데, 그냥 지나칠 순 없잖아..
까잇 150m라는데 뭐..
오늘은 이상하게 아침부터 움직임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몸은 이미 지쳤음에도 불구하고 자꾸 앞으로 앞으로 향한다. 뭔가 속에서 간절함같은 어떤 것이
날 자꾸 어디론가 이끈다. 그래도 몸은 힘들다. 헥헥..
산길이라 그런가..150m가 생각보다 빨리 끝나질 않는다. 150m가 원래 이렇게 먼 거리인가..
이 밧줄이 끝나야 갈길이 끝날텐데, 아무리 올려다봐도 헥헥...
드디어, 어느 지점에선가 고지에 섰다는 느낌이 든다. 흰 밧줄도 이 지점에서 끝난다.
바위위에 쌓여진 조그만 석탑들 사이로 밀양평야와 낙동강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아~시원하다.
오른쪽으로 몇 발자국 옮기니 자그만 석탑이 두어개 세워져 있고..
돌팍에는 '석가탑'과 '다보탑'이라는 이름을 새겨서 영지로서의 상징성을 표현하려하고 있다
그 옆에 이런 암굴이 있고, 이곳이 그 옛날 원효대사와 사명대사가 수행정진했던 곳이라고..
이 암굴의 이름이 '마고 석굴'인데, 그 유래인즉슨
옛날 이 석굴에 '마고(麻姑)''라는 이름을 가진 한 신선이 상주하고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그 신선의 특징은 손톱이 길어서 모든 이의 가려운데를 긴 손톱으로 긁어주면 아주 시원하다고 했다.
이 뜻은 고통받는 모든 중생들이 이 마고 굴에 와서 지극정성으로 기도정진하면 소원이 아주 시원하게 성취된다는 뜻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손톱은 나도 긴데..;;)
지금도 이 석굴은 사람에게 좋은 기가 많이 흐르고 있어서 소원이 있는 사람은 기도하면 효험이 대단하다고...
특히나 이 천태산에는 약사여래 부처님의 서광이 비치고 나반존자께서 항상 상주하는 도량으로
병고에서 고통받는 사람, 사업에 성공코져 하는 사람, 운수, 재수, 출세, 취업, 입학, 출산 기타 여러가지 소원이 있는 사람에게
소원을 이루게 해 준다고 ..
그래서 부처님도 약사여래불을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다.
나도 뭔가 소원을 빌곤 싶었는데, 부처님 앞에만 서면 자꾸 작아지는 마음..
그래서 내 소원이 무엇인지도 자꾸 잊어버리는 이 소심함;;
이제사 생각나는 나의 소원,
"올 가을에는 좀 더 성숙하게 해 주소서.."
내려오는 길에 보니, 천태산 중앙허리께쯤에 황금빛 건물이 번쩍번쩍 눈에 뜨인다.
이 산이 영적 기운도 강하고 주변에 사찰도 많아서 혹시 불교 문화원이라 그런건가..했더니, 원자력 발전소란다. 헉~
이런 청정지역에 설치해도 되나..??
내려오는 길..
사찰 초입에 피어있는 구절초무리가 가을의 향기를 전해준다.
분명, 가을인 게다.
'내 나라 > 가락국 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락국 여인 '여의 낭자'의 슬픈 사랑이야기와 '가야왕국 추정지' (0) | 2011.11.14 |
---|---|
허황옥 왕후가 무사히 바다를 건너온 것에 감사하기 위해 지은 절 '해은사' (0) | 2011.10.19 |
신어산 자락의 가락고찰 ' 은하사'이야기 (0) | 2011.10.16 |
허 황옥 황후가 어머니를 그리며 창건했다는 김해 '모은암(母恩庵)' (0) | 2011.10.10 |
마음의 소요로부터 탈출하고 싶을 때.. '불모산 성주사' (0) | 2011.05.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