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4. 15. 일요일 날씨: 무지 좋다. 오후에는 초여름 날씨
원래는 이러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다. 고창 선운사 동백이 우선이었고, 돌아오는 길에 시간나면 순천 선암사 들렀다 오는 것이었다.
그랬던 것이..
가면서 생각해보니 선운사 들렀다가 내려오는 길에 선암사 들러게 될 경우, 자칫하면 시간이늦어 선암사는 잘 못볼수도 있겠다 싶어
선암사를 먼저 들러서 선암매가 피어 있으면 그 아이만 얼른 찍고 빨리 선운사로 향한다면 오늘 작정하고 나선김에
나의 묵은 숙제 2개를 한번에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데..
선암사를 먼저 들러기로 결정하는 순간
나의 그런 소박한 꿈은 물건너 간 것이다.
선암사는 한 20여년전에 영화 '아제아제 바라아제'를 보고는 로케이션이 너무 좋아서 일부러 찾았던 적이 있었는데..
내 기억속에 있는 선암사는 지금보다 훨씬 규모가 작은 아담한사찰이었던 것으로 저장되어 있어서
이렇게 시간이 오래 걸릴 줄은 몰랐다.
사실 20여년전의 방문 기억만으로 늘 선암사를 안다고 착각하면서
뒷산 조계산 등반을 오더라도 사찰에는 들러지 않고 바로 지나쳐 가곤 했었다.
그런데 오늘 들른 선암사는 내 기억속의 선암사보다 훨씬 더 규모가 있고 그리고 너무 아름다웠다.
맑고 향기로운 선암사의 선암매 향기는 날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도록 그 곳에 주저앉혔다.
그래서 결국은 선운사를 포기해야만 했었다.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는 20여분 도보길을 걸어올라가다보면 '승선교'라고 하는 아취형 돌다리를 만난다.
작은 승선교와 큰 승선교.. 선암사를 방문하게 되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건축물로
선암사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구조물 중 하나이다. 보물 제 400호로 지정되어 있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산야는 나목으로 가득차 있더니만
한두주사이에 세상은 초록으로 물들어가고, 시냇물조차 경쾌하다
선암사는 서기 500년대에 백제의 아도화상이 최초 창건했다는 설도 있고,
신라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설도 있다는데..
현재 남아있는 유물들로 볼 때는 통일신라시대때 창건된 것으로 보는 설이 유력하단다.
고려시대 들어오면서 대각국사 의천이 중창불사하여 그 규모가 엄청나게 커 졌지만,
그 이후에 다른 사찰과 마찬가지로 전쟁 또는 화재 등으로 인하여 소실되기도 했다가 다시 중창불사를 거듭하는 과정을 거쳐
오늘날과 같은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고 한다.
들어가는 입구의 일주문은 공사중에 있고..
종각쪽으로 돌아서 육조고사 범종루 뒤로 올라가니 단청색이 완전히 퇴색한..
있는 그대로 무게감을 보여주는..그러면서 동시에 편안하고 오픈된 공간으로서의 대웅전이 눈에 들어온다.
바람이 불때마다 코끝을 스치는 향기..
그 향기를 따라 발걸음을 옮겨본다. 곳곳에 매화..
향기로운 매화그늘아래 중년의 동행도 아름답고..
매화의 향과 내려다보이는 사찰의 풍경이 한동안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도록 묶어놓는다.
이렇게 맑고 향기로운 공간에서는 누군들 낮아지지 않겠는가..?
선암사는 작은듯이 크고 큰듯이 작다.. 낮고 아담한 전각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모습들이
마치 어느 이국의 골목길에 와 있는 느낌이 든다. 이런 사찰의 느낌은 처음이다. 참 독특하다. 큰 마당이 없다.
빈 땅이 있으면 그 곳에는 연못을 짓거나 아름다운 꽃나무를 심는다.
선암사는 사찰만 특이한 것이 아니라 매화도 독특하다. 그동안 내가 봐왔던 매화들과는 다소 다르다.
통도사에서 봤던 매화보다 꽃잎이 훨씬 작다. 앙증맞을정도로 작다. 새로나온 10원짜리 동전정도의 크기라고나 할까..
그런 것이 향은 또 얼마나 강한지..
지금 이시간까지 향이 내 코끝에 남아있는 것 같은 착각이 일 정도이다.
그래서 특별히 선암사의 매화를 '선암매'로 따로 분류한다.
선암사의 선암매는 원통전과 각황전을 따라 운수암에 이르는 담길을 따라 50주 정도가 심어져 있는데
이들은 천연기념물 488호로 지정되어 있단다
주로 원통전 담장 뒷편으로는 백매화가, 각황전 담길에는 홍매화가 심겨져 있다.
백매화는 이미 개화를 하여 일부는 잎을 떨구고 있는데 반하여
홍매는 이제 반쯤 잎을 열었다.
오늘과 같은 날씨라면 밤새 만개하지 않을까 싶다.
만개된 홍매를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선암매의 수령에 대해서 약 600년정도 되었을 것이라는 기록을 하고 있는데
보기에 수령이 있어보이긴 해도 600년까지로 보이진 않는다. 단 원통전 뒤에 있는 이 나무는 그러해보인다.
이날, 선암사는 봄마실나온 가족과 조계산 등산객들로 가득찼다.
문설주 안으로 엄마, 아빠, 아이들의 삼각 구도가 하나의 선으로 아름답게 연결되어 있다.
각황전 담길과 선암매..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운 공간이라
나도 이자리에서 나의 프레임을 만들어보기도 하고..
원통전은 관세음보살을 모신 관음전이다. 계단식으로 설계된 사찰이 참 독특하면서도 재미있고..
재미있으면서도 신비롭다. 마치 전각들이 숨바꼭질하는 듯하다. 들키지 않으려고 나는 얘뒤에 숨고
쟤는 쟤뒤에 숨고..
제일 신나는 건 엄마따라 부처님 만나러 나온 저 꼬맹이~^^
삼성각 앞에 이 와송도 선암매와 비슷한 시기에 식수되었다 하니 수령이 약 600년 정도 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이 노송은 충분히 그러해 보인다. 허리를 펴지 못해서 거의 누워계신다.
목련꽃 그늘아래가 비어있어서 뭔가 아쉬움에 서성거리고 있었더니
잠시후, 한 소녀가 그늘아래로 걸어들어왔다. 완벽한 4월이다.
'나의 문화 유산 답사기'로 일반대중에게 우리문화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널리 알리는 유홍준 박사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사찰로 '선암사'를 꼽았다.
좋아하는 이유로 여러가지를 꼽았지만 내 기억에 남아있는 것은 계절마다 꽃이 없는 계절이 없다고 했던가..
선암사에는 정말 꽃이 많다. 매화, 산수유, 동백, 벚꽃, 목련 등등..
모양도 색깔도 모두 아름다운 여러가지 다양한 꽃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꽃들이 튀지를 않는다.
그리고 서로간에 불화가 없다.
그들은 모두 주변의 전각과 묘하게 어울어지면서 그냥 선암사의 일부가 되어 있다.
나도 그 속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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