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reading/영화읽기

'늙음'에 대한 철학적 사색을 다룬 영화 '은교'

노코미스 2012. 5. 2. 21:31

 

 


은교 (2012)

Eungyo 
7.1
감독
정지우
출연
박해일, 김무열, 김고은, 정만식, 박철현
정보
로맨스/멜로 | 한국 | 129 분 | 2012-04-25

 

 

안구 건조증으로 눈은 매일 충혈되고..

눈물약을 가지고 다니면서 눈이 불편하다싶으면 시도 때도 없이(공적인 회의석상에서조차도..) 투여해주어야 하고..

그렇게 한다해도 늘 눈은 뜨거운 열기로 작열감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그 열에 의해서 눈더등은 늘 부어있고, 그것은 불편하기 이를데 없다. 게다가

안면은 언제나 갱년기 증후군으로 벌겋게 들떠 있고..

이런 증상은 삶을 불편하게 할 뿐만 아니라 그 모습 또한 추하게 만들어간다.

스스로 거울을 보기가 두려워지고..

사진에 나의 모습이 찍히는 것이 두렵다...이것이 늙어가는 것이로구나..

 

나이보다 어려보인다는 이유로

'나잇값못한다'는 질시어린 농담을 우스겟소리로 즐기곤하였던 것이 불과 엊그제같은데..

늙음은 순식간에 찾아온다.

 

나의 의지에 의한 것도

그렇다고 내가 잘못해서 받은 천벌도 아닌데..

그것은 과연 오래 살았다는 이유로 당연히 받아들여야 하는 노인들의 천형인가..?

 

 '은교'의 작가 박범신은 

 노인들의 주름을 추하게 보는 이런 대중들의 시선에 항변하고자 한다.

나이듦..그것은 자연의 순리이며 섭리일뿐이지

추한것도 아니고 더러운 것도 아니다.

 

점점 내 청춘이 내 젊음이 나이에 잠식당해가고 있는 모습을

수동적으로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자신의 무력함에 우울해하고 있던 즈음의 나였던지라

 

시인 적요가 비통한 마음으로 부르짖었던 아래의 한마디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이 영화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알아차렸고

그리고 한달음에 영화관으로 내달렸다.

 

"너희 젊음이 너희노력에 의해 얻어진 상이 아니듯이

나의 이 늙음도 나의 과오에 의해 얻어진 벌이 아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17세 소녀가 우연히 나의 영역으로 찾아들었다.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인가..?

 

스러져가는 내 늙음에 비교하면

한여름 물푸레나무만큼이나 싱그러운 저 젊음은 얼마나 아름답고 관능적인가..?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이 아름다운 청춘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내 속에 사그러져가던 열정의 불씨하나 살아남아

꿈길로 숨어들어 잠시 그녀를 탐했다고 해서

'더러운 스캔들'이라고 비난받는 것이 과연 온당한 것인가..?

 

과연 노인의 사랑은

노인이라는 이유만으로 17세 소녀에 대한 감정을 '더럽고 추악한'것이라고 매도당해도 정당한 것인가..?

 

 

'은교'에서,

다른 영화적 요소에 대해서도 할 말은 많지만

나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같은 '늙음 또는 나이듦 또는 노인의 주름'에 대한 시인의 철학적 명제였다.

 

두번째 감상은 캐스팅과 관련하여

왜 늙은 시인을 표현하는데 젊은 배우 박해일이어야 했을까에 대한 나의 생각이다.

 

영화 초반에서는 박해일의 연기투혼에도 불구하고

적요에게 스며들기에는 박해일의 기본바탕이 너무 젊다는 느낌을 지울수가 없어서 미스캐스팅이 아닐까라는생각을 잠시 했었다

그러나 영화가 배우의 연기보다는 스토리의 흐름에 의해 흘러가게 되는 후반부로 접어들면서부터는

 그런 생각은 사라져버리고..

오히려 젊은 연기자를 선택할 수 밖에 없었던 감독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만약,

적요의 역할을 정말 그 연령대의 연기자가 했다면 박해일만큼 그들의 내면을 객관적으로 담담하게 표현해낼 수 있었을까..?

 

숨기고 싶은 자신들의 사그러져가는 육체를 온전히 드러낼 수 있었을까..?

17세 어린 처자에 대해서 갖게 되는 그 연령대의 숨겨진 욕망을 (정말 남의 일인것처럼) 그대로 드러낼 수 있었을까..?

그리고

거울이라도 같은 거울이 아니라는 은교의 '안나수이 공주거울'을 집어주기 위하여

그 위험한 낭떠러지를 타고 내려갈 수 있었을까..?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젊은 연기자의 선택은 불가피했었을 것이고

그 중에서도 그나마 박해일은 최선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은교'역할을 맡은 김고은에 대한 생각이다.

 

영화 '은교'의 원작인 박범신 선생의 소설 '은교'는 은교를 매개로 한 이적요와 서지우의 이야기였다.

그래서 소설속에서는 은교가 그렇게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그에 비하면,

영화 '은교'는 '은교'에 대한 영화이다. 오히려 서지우에 대한 이야기가 구체적이지 않다. 

그런데 '은교'를 '은교'영화로 완성되도록 한 데에는 시나리오의 역할도 있지만 은교역을 맡은 김고은의 역할이 큰 것으로 보인다.

김고은이 은교였음으로해서

영화 '은교'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였고, 사람들은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만약 김고은이 아닌 다른 배우의 은교였다면

박해일의 적요연기가 아무리 훌륭했다 하더라도 또는 시나리오가 아무리 탄탄했다 하더라도

은교에 대한 적요의 감정을 대중들로부터 이해받기가 어렵지 않았을까하는..

 

김고은은

그 누구도 적요의 '은교'에 대한 감정을 감히 비난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