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 왕이 된 남자 (2012)
8.3
이 영화를 보면 영화적 메카니즘에 맞추어 너무나 잘 짜여진 영화라는 느낌이 든다.
그런 영화의 특징은 뭔가 흠잡을 건 하나도 없는데도 왠지 여운이 그닥 없다는..
그것은 '진정성'의 문제와 연관있다.
최근에 우리나라의 문화로서 드라마 시장이 상당히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점은 칭찬할 만한 일이나
그 발전과정에서 문화상품을 찍어내기 위한 산업공학적 메카니즘이 함께 발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소 역기능도 있는 듯하다.
산업공학적 메카니즘이 개발되면 굉장히 빠른 시간에 빠른 속도로 문화를 양산해낼 수 있는 장점은 있으나
진정성으로 대변되는 '정신' 이 유입될 수 있는 시간이 제한된다는 점에서 역기능을 제공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정신(soul)'이 빠진 드라마는 관객을 사로잡기 어렵다.
그리고 정신이 빠지는 순간 그것은 문화라기 보다는 다량화된 공산품이 된다.
'광해, 왕이된 남자'를 보고난 느낌으로
고급양장지로 포장한 약간 비싼 공산품 하나를 선물받은 느낌이라고 표현하면 심한 표현일까..?
트라우마적 페르소나를 가진 예민하고 독단적인 광해군과
저잣거리에서 무능한 조정과 부패한 권력을 주제로 음담패설 만담꾼으로 살아가던 천민 하선의
이중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한 이 병헌의 연기도 흠잡을 데 없었고..
『'광해군 일기 100권 8년, 2월 28일'
“숨겨야 할 일들은 기록에 남기지 말라 이르다”
...
그리고 조선왕조실록에서 광해군 15일간의 행적은 영원히 사라졌다.』
이 기록으로부터 영화적 상상력이 시작된다는 점도 나무랄데 없는 창의적 출발이다.
그 역사 속에 사라진 15일 간의 기록 <광해, 왕이 된 남자>
천민 하선이 왕이 되어가는 과정에 왜 문화적 충돌이 없었겠는가?
그런 문화적 충돌을 영화적 재미로 재구성하여 보여주는 깨알같은 연출력도 나쁘지 않다.
사이사이 따뜻한 인간적인 관계를 삽입하여서 영화적 감동을 선사하는 것도 잊지 않았고..
자칫하면 남성중심의 삭막한 영화가 될 수도 있었던 영화에
어여쁘고 당찬 한 효주를 넣어서 달콤한 러브라인을 살리는 것 또한 빼먹지 않았다.
이렇게 다양한 영화적 요소들을 모두 다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난 왜 이 영화에 감동이 일지 않을까..?
어쩌면 질문에 답이 있는지 모르겠다. 너무 많은 것을 갖추어서 그런거 아닐까?
너무 많다는 것은 하나에 몰입하는 깊이가 없음과 같은 뜻이다.
이런 비유가 맞을지는 모르겠으나
오늘날 우리는 유명한 호텔의 음식을 한번쯤 먹어보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그런 경우 음식으로부터 감동받는 경우는 드물다.
처음에는 제공되는 음식의 비쥬얼로부터 많은 기대를 하고 감동을 받은 것처럼 착각하지만
먹고 일어서는 순간 우리는 정성이 아닌 음식공학적 레시피에 의해 만들어진 음식에 대해 그닥 감동을 받지는 못한다.
반면에, 엄마가 끓여주는 뚝배기 된장국에서 우리는 감동을 먹는다.
왜냐하면 엄마의 뚝배기에는 진정성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도 그런 식이다.
영화적 포장은 좋고 그래서 보고 있는 그 당시에는 감동받은 것 같지만
그것은 착각일뿐
우리의 기억속에 여운으로 남아있지 않은 한 그것은 감동이라 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 중 하나,
한 효주만큼은 감동스럽다.
그저 착하고 순한 어린 여배우정도로 생각했는데,
이미 성은이 끝난 지아비를 기다리는 외로운 여심과
그럼에도 지켜야 할 중전으로서의 도도하고 근엄함
그리고 정적인 서인들의 정치적 공략으로부터 부모형제의 안위를 지켜내어야 하는 어린 여식으로서의 걱정을
하나의 얼굴로 저렇게나 단아하게 잘 표현해 낼 수 있을까..
이 영화에서 유일한 여운은 '한효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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