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reading/영화읽기

'이별의 미학'이라 쓰고 '삶의 미학'이라 읽는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노코미스 2014. 12. 9. 14:27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2014)

My Love, Dont Cross That River 
8.9
감독
진모영
출연
조병만, 강계열
정보
다큐멘터리 | 한국 | 85 분 | 2014-11-27
다운로드

 

 

"옛날 옛적 조용한 산골마을에

할머니 할아버지가 오손도손 행복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들려주던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영화속의 할머니 할아버지는 그렇게 살고 있었습니다.

 

 

파이 서비스가 종료되어
더이상 콘텐츠를 노출 할 수 없습니다.

자세히보기

 

매일 아침 고운 커플룩으로 단장하시고는

봄이면 꽃을 꺾어 서로의 귓가에 꽂아주고,

여름에는 물놀이로, 가을이면 낙엽으로, 겨울이면 눈싸움을 하면서 그렇게 행복하게 사십니다.  

 

그 연세에도 할아버지는 동네 꼬마개구쟁이처럼 먼저 장난을 걸고

할머니는 귀찮아 하시는 듯하면서도 언제나 장난을 받아서 함께 즐겨하십니다.

 

 할머니는 그렇게 살아온 세월에 대해서 '고맙다'는 말씀을 입버릇처럼 하십니다.

'이 나이에도 할부지는 참 곱네요~

나는 폭삭 늙었는데..'

 

'할부지 기다려줘서 고마워요'

나 무섭지 않도록 바깥에서 기다려줘서 고마워요~'

부부라면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일 일들도 언제나 할머니는 고맙다하고 감사해 하십니다.

천상 여자이십니다.

 

할머니 14살에 9살 많은 할아버지랑 혼례를 치르고, 그후로 76년을 함께 살았답니다.

참 지루할 것도 같은데..

두 분은 하늘이 맺어준 천생연분이 확실히 맞는 거 같습니다.  

 

장을 갈 때도 두 분이 손을 꼬옥 잡고..

아침에 어지러진 마당 청소를 할 때도 두분이 나란히 함께..

산에 들에 나무하고 나물뜯고 꽂놀이할 때도 항상 두분이 그렇게 함께 하십니다.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은 남의 일이지만 참 훈훈하고 흐뭇합니다.

 

 

 

 

평소에도 숨이 가빠서 쌕쌕하는 소리가 들리시더니..

 

영화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아마도 2번쯤 지난 어느 해

봄이 지나고 여름 지나면서 어느순간부터 할아버지의 기침소리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가슴 저 아래쪽 애간장까지 말아올릴듯한 격한 기침소리가

작은 시골마을의 정적을 깨우기 시작하더니

어느듯 할아버지의 몰골은 2년 전 건강했던 모습은 오간데가 없어지고

차가운 겨울 나뭇가지에 메달린 마지막 잎새만큼이나 앙상하게 메말라 갑니다. 

 

이제 할머니는 이별을 준비해야 합니다.

 

14살에 혼례를 치르고 17살에 초야를 치른후 12의 자녀를 낳아서

내복한벌 사입히지 못한채 6명의 자녀를 먼저 보내고

그렇게 76년 한 평생을 함께 한 자신의 반쪽..

 

그러나 할머니는 그저 바라보기만 하실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습니다. 이 또한 받아들여야 하는 자연의 섭리인 것을..

  

바라만 보던 할머니가 결국 자다말고 일어나서

생전에 깔맞추어 입었던 할아버지 옷들을 하나하나 챙깁니다. 

'저승에 가서 내가 없더라도 항상 깨끗하게 입으시라고'기원하면서 그 옷들을 먼저 저승으로 보냅니다.

 

할아버지 또한 이별이 가까워져 왔음을 알고 있습니다.

한 밤에 잠시 눈이 뜨여지면

할아버지는 옆에 누운 할머니 얼굴을 안스러운 듯 어루만집니다.

어떤 회한이 있었을까요?

 

 

여름내내 힘들어 하시던 할아버지는 결국 하얀눈이 온 세상을 깨끗이 덮어주던 어느 겨울날

그렇게 예쁘하던 할머니를 두고 혼자서 자신의 본향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렇게 준비는 해 왔지만 막상 할아버지를 보내고

홀로 남은 할머니는 할아버지 무덤가에서 차마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합니다.

 

님이여 그 물을 건너지 마오

임이 그에 물을 건너시네

물에 빠져 돌아가시니

임이여, 이를 어찌할꼬

 

아직 온기가 채 가시지 않은 흙빛 무덤앞에서 차마 발길을 돌리지 못한 채

먼저 간 할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연민하며 하염없이 흐느끼는 89세 할머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심정은 

젊은 청상과부의 애끓는 통곡과는 다른 모습으로

보는 이의 가슴을 애잔하게 파고듭니다.

 

 

라스트 신에서 느끼는 애잔함은 나만 느끼는 감정은 아니었나 봅니다.

유독 나만 감성적이어서 특별히 눈물을 흘렸던 건 더더욱 아니었던거 같습니다.

눈물에 막힌 코맹맹이 소리가 주변의 여기저기서 들려옵니다.

 

그런 소리들을 의식하면서 '저 사람들은 왜 울지? 그리고 나는 왜 울지?'

뜬금없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흘린 내 눈물의 의미는 과연 무엇이었던거지?

예술적 감동이었나? 그런건 아닌거 같습니다.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영화이니까..

 

아님 내가 다른 사람보다 특별히 감성적 취향이 예민해서 그런걸까요?

그것도 아닌거 같습니다. 나름 이성적이라 생각하는 나인데..

 

그럼 뭘까? 혼자 생각해 봤습니다.

.

.

.

아마도 부러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나는 내 주변에서 저렇게 다정스럽게 사는 사람을 한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서로를 저렇게 아껴주면서 사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고 뚱하고

서로에게서 뜯어낼 생각만 하고 얻어낼 생각만하고..

뭔가를 받아도 고마운줄도 모르고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결혼을 거래로 생각하거나 아니면  권력관계로 생각하고..

 

그것도 아니면 한쪽이 일찍 요절하고

남은 한쪽은 남은 가족을 위해 평생을 희생하면서 삶을 혐오하고 ..

 

그러면서 생각합니다.

내 마지막 순간에는 과연 누가 날 위해 울어주고 누가 날 연민해주지?

이 순간, 극한의 부러움이 밀려옵니다.

 

...

결국 내 울음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삶에 대한 경외와

내 마지막 순간에 대한 자기연민의 표출이라고

제 방식으로 해석해봅니다만...

그게 다는 아니겠지요~

 

느낌은 보는 사람에 따라 저마다 모두 다를 것이긴 하겠지만 

분명 모든 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어떤 본질이 있는게 분명합니다.  

 

함께 사는 것이 힘들거나

함께 사는 것을 혐오하는 사람들은

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살아가는 모습을

한번쯤 보시는 게 좋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