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 22(금)
'프로피티스 일리아스'에서 내려와서는 '아크로티리(akrotiri)'로 향합니다.
가는 길은 가끔은 우리네 농촌 풍경처럼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피라만큼이나 거대한 칼데라 뷰가 보이기도하고..
'와인로드'라는 이름에 걸맞게 곳곳에 포도밭이 보이기도 하고..
마을과 농지의 배치는 마치 우리나라 제주도 느낌이 나기도 하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이정표를 따라서 때로는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도착했습니다. 어느 해안가에..
사실은 '아크로티리 선사유적지'를 물어왔는데
알려주는대로 왔는데도 유적지는 보이질 않고 '레드비치'표지판만 보이는군요~
그래서 '레드비치'에 도착했습니다.
아~!
이것이었습니다.
프로피티스 일리아스 고원으로 올라왔던 그 광채~
파도가 그토록 강력한 광채를 낼 수 있다는 것을 이 때 처음 알았습니다.
저쪽 수평선 중간쯤에서부터 하얀 포말로 밀려오는 파도를 바라보고 있자니
그 에너지가 얼마나 강렬한지..
그것은 단순한 어떤 물질의 입자라기 보다는
그야말로 포세이돈이 하얀 수염을 휘날리며 힘차게 달려오고 있는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칼데라 언덕 아래에 오래된 하얀 교회가 하나 있고..
아무도 찾는이 없는 이 겨울 바닷가에
우리뿐인줄 알았더니..
거의 동시적으로 세 사람이 더 도착했습니다.
근데
그 세사람이 모두 대한민국에서 온 사람들이군요
처자 둘, 총각 한명~
다들
호기심과 모험심들이 대단한 젊은이들입니다.
내 딸은 오로지 '춥다'는 생각뿐..
이곳이 왜 '레드비치'인지를 보여주는 풍광이군요~
바람이 얼마나 심한지
거의 우릴 날려보낼 기세이더군요~
우리 모녀랑 모두 다섯명의 같은 국적 다른 팀의 외국인이
이국의 바닷가에서 바람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저 수평선너머에서부터 광채가 피어오릅니다.
정말이지 멋진 곳입니다.
저의 사진만보고는 제가 그 자리에서 느낀 느낌에 공감하는 분은 한분도 없겠지요~
이럴때 정말 저는 사진을 배우고 싶습니다.
지금 에게앞바다에서 느끼는 이 느낌은
이전에 보아왔던 태평양 앞바다, 대서양 앞바다, 지중해 앞바다에서 느꼈던 느낌과는 완전히 다르군요..
땅표면은 붉은 화산석으로
그 어떤 생명체도 살리지 못할 것처럼 보이는데,
그 곳에서도 뿌리를 내리는 생명체들이 있으니 참 대단하다는 생각과..
겨울 산토리니 여행에 대한 씁쓸함을
레드비치에서 만난 그 광대한 에게해로부터 위안을 얻으며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갑니다.
레드비치를 보고는
비치들어오는 좁은 길 입구로 나가니
마주보이는 건물 벽에
아까전에 그렇게 찾아헤메도 보이지 않던 '아크로티리 선사유적지' 팻말이 있군요~
레드비치 들어가는 입구 맞은편에 제법 큰 박물관 형태의 건물이 있는데
유적지 위에 통째로 지붕을 덮어서 그대로 박물관을 만든 형식입니다.
사실은 팻말을 발견하고는 들어갈려고 보니
2시 40분인거여요~
이 동네는 3시 되면 모든 공공기관 클로징하는거 아시죠~
이거 들어가도 되나 마나 고민하다가
일단 문이 열려있으니 들어가자 하고는 들어가는데..
저 위에서 어떤 여인이 내려오네요.
"뮤지움 볼 수 있느냐?"물으니
역시 예상했던대로 3시에 문을 닫아야 한다면서 시계를 보더니..
자기를 따라 오라네요.
앞서 가더니 뮤지움 문을 열어줍니다.
큰 공장동 같은 느낌이 나는 건물에
폐허가 되어 있는 하나의 마을이 나타납니다.
들어가니
밀폐된 공간안에 갇혀있던 흙냄새가 매캐합니다.
이 유적지는
산토리니(구, 티라)의 최초의 거주인들이 살았던 거주지랍니다.
이 곳에 최초 거주를 시작한 것은 BC5,000년 경 신석기시대 중기부터라고 보고 있으며,
수도 없이 반복된 지진과 화산폭발로
끊임없이 파괴되고 그 위에 재건되고 하면서 몇 겹의 도시가 형성되었다합니다.
17C 까지 사람들이 살았지만,
17C말경에 닥친 갑작스런 화산폭발로 인하여 마지막 도시는 화산재에 묻힌채
고스란히 그대로 보존되어 있었던 것이 복구되고 있고,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모습은 청동기 중기 거주지까지도 볼 수 있다하군요~
그러나, 5분도 안되는 시간안에
시기를 구분해가며 파악할 여유는 없었고,
사진에 찍힌 저 폐허가 청동기시대 거주지인지, 17세기 거주지인지는 알 수가 없군요~
첫 지진으로 파괴된 이후에 나타난 청동중기 거주인들은
에게해를 넘어서 지중해 동쪽 키프러스에서 크레타에 이르기까지
고기잡이를 하거나 해상무역을 할만큼 그활동범위가 꽤 넓었다고 합니다.
그로 인하여 경제적 문화적으로 상당히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며 살았답니다.
발굴된 거주지에서 보여주는 가옥의 집기나 가구들은 일반적으로 매우 호화롭고,
벽에 그려진 프레스코화의 확산수준을 보면 정신적으로도 매우 부르조아적인 생활을 한 것으로 보인답니다.
이 유적지 발굴은
1967년에 아테네 고고학회가 진행하는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시작되어 지금까지 진행중에 있다는군요.
더 많은 이야깃꺼리가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후다닥~보고 나옵니다.
비록 5분안에 후다닥 볼 수밖에 없었긴 하지만..
자칫했으면 이래저래 못 볼뻔 했던 유적지를 보고나니
짧은 순간이지만 기분이 흐뭇합니다.
흐뭇한 마음을 안고는 티라의 남서쪽끝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등대가 있는 '곶'을 찾아갑니다.
그런데 가도가도(그래봐야 20여분?) 목적지가 보이질 않습니다.
제대로 가고 있는지 물어보고자하나 길거리에 인적이 없습니다.
길거리 가게들은 비수기라 모두 문을 닫았습니다.
가스게이지도 아슬아슬합니다.
지도를 보니 이 지역에는 가스 스테이션도 없습니다.
목적지 도달하기전에 가스가 앵꼬되면 어떻게 하지?
방향은 제대로 잡은거는 맞는가?
온갖 걱정이 떠오르면서
나의 걱정이 등대가 있는 그 '곶'을 포기하라 합니다.
그래, 일몰을 볼 수 있는 곳이 그곳뿐이냐? '이아'도 좋대잖았어~
아침의 이아와 일몰의 이아중 어느쪽이 좋은지 비교해보는 것도 의미있지 않을까..
그래, '이아'로 가자~
..하고는 다시 이아로 왔습니다.
오후가 되니 몇몇 관광객들이 이아의 일몰을 보러 몇몇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그래봤자 열명도 안 되어 보이는데..
그 중 두 사랑은 오전에 레드비치에서 봤었던 우리나라 처자이고
나머지는 중국사람들입니다.
오후의 이아는 아침의 이아보다 바람이 더 강합니다.
오늘 하루내내 바람만 맞고 다닙니다.
바람속에서도 일몰이 아름답다하니 참고 기다려봅니다.
점차 서쪽 하늘이 물들어가기 시작하지만..
붉은 색이 짙어지기 전에 어둠이 먼저 내렸습니다.
아침은 아침대로
저녁은 저녁대로 아름답지만..
그래도 역시..
아침에 다녀가길 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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