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 25(토) 날씨: 햇살 좋고 바람 무척 많음
이번 여행의 마지막 날입니다.
할 일이 없습니다.
호텔에서 뒹굴거리기로 합니다.
딸냄은 아예 일어날 생각이 없습니다.
이 놈은 다른 어떤 곳보다 와이파이가 터지는 호텔만큼 좋은 곳이 없어 보입니다.
저놈의 스마트폰을..
그런데 뭐라고 할 수도 없겠지요. 이 작은 섬안에서는 더 볼 것도 없고 갈곳도 없으니..
게다가
어젯밤 폭풍우처럼 쏟아지는 소낙비를 맞으며 티라마을까지 왔다갔다 하느라 몸살기까지 있다하니
억지로 일어나라는 말조차 하기가 어렵습니다.
이 동네에도 생계형 고양이들이 많아서 아침에 눈뜨면
문앞에 와서 우리가 문 열어줄때까지 대기하고 앉았습니다.
그래서 딩굴거리다가 허리가 아플때쯤이면 일어나서
동네 고양이들과 장난치고 놀다가..
그렇지만 난 도저히 누워있을 수가 없습니다.
내 평생 이렇게 루즈하게 여행을 해 본적이 없답니다.
나는 여기저기 부유하면서 돌아다니는 스타일이라고 치면
딸냄은 한 자리에 앉아서 맛았는 거 먹고 뒹굴거리는 걸 좋아하는 스타일입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아이에게는 여행이 크게 감동적이진 않았었나봅니다.
다만, 엄마하고의 최초 여행이라는 점에 의미를 두고 따라 나선거였는데..
난, 누구나 여행을 좋아할 거라 착각했습니다.
오히려,
늘 혼자만 생활하던 아이는
누군가와, 그 누군가가 엄마일지라도, 함께 생활하고 그 누군가에게 나를 맞추고
가끔은 평가받기도 하고 질책받기도 하는 이런 과정들이 많이 힘들고 가끔은 상처가 되기도 했나 봅니다.
근데 난,
에미로서의 난
그런 과정들이 자신을 성장시키는 자양분이라 착각하면서
끊임없이 아이를 휘몰아칩니다
물론, 일부는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자신을 내려놓는 모습을 보니 안스럽기 짝이 없습니다.
하지만,
상처없는 생명이 어디있겠습니까?
저 또한 딸의 성장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함께 반성하고 함께 성장합니다.
다행히 처음 여행에서 내가 의도했던 것들이
과정에서는 다소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마지막에서는 선의로 잘 실현된 것 같다고 스스로 평가합니다.
혼자있고 싶어하는 아이를 남겨두고는 혼자
마을 산책을 나갑니다.
사실 산토리니의 주도가 티라마을인데,
티라 마을은 메인도로로만 다녔지, 옛길은 아직 못 봤군요~
그래서 티라 옛길을 따라 슬슬 걸어봅니다.
겨울이라도 바람만 불지 않으면
해양성 기후인지라 기온은 따뜻합니다.
이 따뜻한 햇살에도
바람만 불어오면 정말 가슴 시립니다.
얼마나 바람이 강한지
저는 계속 담벼락을 잡고 다녔습니다.
칼데라 가장자리를 따라 사람들의 발길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옛길을 걸으면
그들의 삶에 터전이었던 에계앞바다와 언덕위의 하얀 집들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사람들이 이아를 아름답다 하는데..
물론 이아는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오늘 티라 옛길을 걸으면서 느끼는 점은
티라도 이아 못지않게 아름답습니다.
가끔 대도시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일부분의 모습때문에 과소평가 받는 부분들이 있는 듯합니다.
그런경우는 골목으로 들어가보면
그 속에 오랜 도시가 간직한 시간과 역사들이 있습니다.
티라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옛길을 걸어보길 권합니다.
골목 이름이 '골든 스트리트'랍니다. 이름값 합니다.
저 아래 구, 항구가 보입니다.
저 곳을 내려가기 위해서는 저 아래 보이는 몇 굽이의 가파른 계단을 걸어서 내려가든지
아님
동키를 이용하든지
아님
곤돌라를 이용하면 되는데..
셋다 맘에 안듭니다.
첫번째, 걸어가는 건 현재 저의 관절상태로는 말도 안됩니다. 내려는 가더라도 올라오질 못할 거 같습니다
둘째, 동키 이용하는거? 냄새도 냄새지만..불쌍해요~
멀리서 보면 동키를 타고 다니는 모습들이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옆에서 인간이 행하는 동물에 대한 태도를 보면 거의 학대에 가깝습니다.
제 무거운 몸까지 의탁해가면서 그들을 힘들게 하고 싶지는 않습디다.
셋째, 곤돌라 이용? 가느다란 줄에 메달려 산토리니 강풍에 흔들거리는 곤돌라를 보니..
엄두가 안 납니다.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계속해서 골목을 따라 내려가면
많은 유서깊은 도시들이 그렇듯이
골목안에 오래된 그리고 엔티크한 아기자기한 까페, 레스토랑, 스토아, 호텔 등이 숨어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거의 잠정 휴업상태들입니다.
몇 개 가게들만 문을 열어
그나마 뜸하게 오는 손님들을 맞이합니다만..
역시 가격은 관광지 물가입니다.
한바퀴 돌고 나니
점심시간입니다.
자고 있는 녀석 점심이 궁금합니다.
다시 올라가서 아이를 깨웁니다.
이 아름다운 풍광도 보여주고 싶고
뭔가 배도 채워져야 할 거 같아서..
다행히 피로가 다소 풀렸는지
말없이 일어납니다.
거리를 아무리 걸으면서 들여다보아도 터어키 케밥집이나 길거리 피자집을 빼고는
제대로 음식을 하는 레스토랑이 없습니다.
그래서 선물준비하기 위하여 들어간 가게 주인아줌마에게
전통음식 잘하는 레스토랑 추천해 달랬더니
두 집을 추천해 주는데..
한 집은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어서 포기하고
다른 한 집은 마침 전날 우리가 이미 가봤던 집이라 쉬이 찾아갔습니다.
티라 중앙광장 아래쪽 대로변에 있는 '펠리칸 레스토랑'입니다.
작은 호텔과 함께 운영하는 곳이더군요~
사실
이 시기에 제대로 된 레스토랑은 여기밖에 없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
대체로 맛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
이 집은 객관적으로도 맛이 있었고,
현지인의 추천이 있고보니 더 신뢰가 가는 곳이었어요~
사실 전날은 이 집에 대한 아무 정보없이 들어가서 먹었는데
하나는, 양고기로 만든 전통 스튜이고
다른 하나는 토마토 해물 스파게티인데
맛에 깊이가 있다고 느꼈거든요~
그런데, 오늘 현지주민으로부터 추천을 받고 보니 더 신뢰가 갑니다.
그래서, 이게 맛있을까 저게 맛있을까 망설이지 않고
오늘은 자신있게 주문을 합니다.
마지막 날이니 오늘도 좀 더 그리스적인 것으로..
그리스 샐러드입니다.
별거 아닙니다. 그냥 듬성듬성 썰어넣은 오이, 피망, 적양파, 토마토, 올리버, 그 위에 큼직한 체다치즈 3조각..
그것뿐입니다. 근데 정말 맛있습니다.
그 비법은 올리버 오일입니다.
한국에서 사 먹는 올리버 오일에서 이런 맛을 낼 수가 없습니다.
그리스 샐러드의 생명은 그리스산 올리버 오일임을 재확인하고..
다음은 문어요리인데요~
그리스에 가면 반드시 문어요리를 먹어보라해서 골랐는데
이렇게 나오는군요~
문어가 들어간 샐러드입니다.
알았으면 그리스 샐러드와 이것 중 하나만 했을 터인데, 찬 음식인줄 몰랐습니다.
문어의 식감이 우리나라 문어숙회보다는 다소 딱딱합니다. 마치 약간 꾸다리로 말린 것처럼..
어디선가 보니 돌문어라서 그렇다는군요~
근데 역시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이건 쇠고기 스테이크였던 거 같은데..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제 포크가 이쪽으로 수도 없이 드나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역시 맛있습니다.
이곳에서 3시간 넘게 앉아서 수다를 떨고는 해가 질 때쯤 일어나서 짐싸러 갑니다.
숙소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에게해입니다.
사흘을 길다고 투정했었지만
그 긴시간동안 이렇게 아름다운 자리에 앉아서
여유한번 부려보질 못했군요
떠날 때가 되니
이별과 관련된 감정들이 슬슬 감성을 건드립니다.
산토리니에 대한 모든 투정들
에게해에 던져버리고
햇살 쨍~했던 어떤 한 순간의 아름다움만 마음에 새기며 돌아가고자 합니다.
잠자리에 들기전에 아이에게 묻습니다.
여행이 어떠했느냐고~
"응 좋았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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