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라 /서라벌 기행

신라 말기 왕들이 잠들어 있는 삼릉주변에서 배리 일정을 끝내다

노코미스 2015. 10. 10. 23:30

 

 

오전에 나설 때에는 경주 전역을 일주할거라는 원대한 포부를 품에 안고 나섰지만

모친하고 다니다보니 진도가 뜻대로 진행되질 않습니다.

 

나정에서 삼릉까지..

불과 1킬로미터도 될까말까한 거리에서 뱅뱅거리고 있습니다.

 

어느덧 해도 기웃기웃 기운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엄니 기운도 기웃기웃 기울어가고 있구요~

 

일정을 마무리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는 듯 합니다.

 

삼릉을 마지막으로 오늘 일정을 접자 합니다.

 

 

남산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는 삼릉까지 몇발작 걸어야 합니다.

 

모친에게 걸을 수 있겠는지 물으니 괜찮으시답니다.

 

모처럼 건강해 보이십니다.

 

 

 

 

쉬엄쉬엄 계곡길에서 삼릉쪽으로 들어서니

와~가 아니라 아~ 감탄사가 나옵니다.

 

왕릉에 대한 경외감으로 나오는 와~ 가 아니라

아~

 

무덤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는 것인지..

이 유려한 곡선이라니..

 

 

 

삼릉은 신라 제 8대 아달라왕, 제 53대 신덕왕, 54대 경덕왕의 무덤을 일컫습니다.

제일 아래로부터 아달라왕릉, 가운데가 신덕왕, 젤 위쪽이 경덕왕릉입니다.

 

그런데 의문이 하나 생기는군요~

8대 아달라왕과 53대 신덕왕 사이에 약 750년 정도의 간격이 있는데

어떤 이유로 함께 모았을까요?

 

찾아보니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군요

8대 아달라왕이후로 중간에 미추왕이 잠깐 나왔다가 16대까지 계속 석씨가 집권을 하다가

17대 내물왕부터는 통일신라에 이르기까지 계속 김씨가 집권해 왔습니다.

통일신라 후기에 김씨계의 권력다툼으로 정권이 혼란스러워지고 마땅한 후계자가 없어지자

박씨에게 기회가 오게 되는군요

 

그가 바로 53대 신덕왕인데 그는 아달라왕의 원대손이라하네요

그리고 54대 경명왕은 신덕왕의 아들이고 하니 함께 묶은듯 합니다.

 

그러나 사실 이 무덤들이  세 왕의 능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학계의 입장이군요.

 

 

 

 

아뭏든~

 

세 고분 모두 외형은 원형봉토분으로 통일신라시대 왕릉의 규모와 비슷하나,

현재 놓여 있는 3개의 상석은 모두 최근에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신덕왕릉이라 일컬어지는 중간 고분은 1935년과 1963년 두 차례에 걸쳐 도굴이 되었는데

도굴을 계기로 내부 조사가 이루어졌고, 덕분에 통일신라 후기 능의 축조양식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는군요~

 

「내부구조는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인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墳]으로서 평면은 사각형에 가깝고,

궁륭형(穹窿形) 천장으로 되어 있는 널방은 자연괴석(自然塊石)으로 축조되어 있다.

 

널방 바닥 가운데에는 자연석으로 높이 35㎝의 방형축대를 쌓고

그 위에 두께 5㎝ 가량의 판석 2개를 남북으로 놓아 주검받침을 만들었다.

 따라서 이 고분은 두 사람의 시신이 동서방향으로 봉안된 합장묘(合葬墓)형식이다.

 

이 고분에서 가장 주목되는 점은

북벽과 동서 양벽의 일부에 연속해 마치 병풍을 돌려세운 것처럼 채색된 벽화가 있다는 것이다.

벽화는 단순한 채색면에 지나지 않지만 벽화자료가 거의 없는 신라고분에서는

매우 주목되는 자료일뿐만 아니라 더욱이 경주 일원의 신라고분에서는

지금까지 확인된 유일한 채색벽화라는 점에서 매우 의미가 크다.

 

이 벽화가 의미하는 내용을 확실히 알 수는 없으나,

5색을 이용한 채색은 오행설(五行說) 혹은 그와 결부된 방위신사상(方位神思想)과 관련이 있을 것이고,

그림의 너비가 12폭이라는 것도 12지신(十二支神)의 사상과 관련된 것으로 보고 있다.」

 

 

 

왕릉이 신덕왕의 능이냐 아니냐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는 당시의 능의 축조양식이나 장묘양식을 알 수 있었다는 점은 참으로 의의가 크다 할 수는 있겠습니다.

 

 

 

아뭏든 아무리 의의가 큰 발견물이 있다하더라도

눈앞에 보이지 않는 사실은 눈에 보이는 작은 아름다움보다 감동이 크지는 않습니다.

 

 

 

저는 지금 그저 하나의 작은 선일뿐이지만

3개의 능이 이어지는 이 유려한 곡선의 아름다움에 완전 빠져들고 있습니다.

 

 

 

신라후기의 신덕왕, 경명왕, 경애왕이 박씨계 왕인데

경애왕릉은 오히려 삼릉옆에 따로 독립되어 있습니다.

 

 

 

확실히  단일묘와 비교해보면 삼릉의 유려한 곡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비교가 되실것입니다.

 

 

 

 

 

 

경애왕릉을 마지막으로  마을쪽으로 내려오니

와~

 

마을이 매우 아름답게 정비되고 있습니다.

 

앞으로 경주여행을 오는 분들은 숙박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듯합니다.

배리주민들이 마을을 이렇게 아름답게 가꾸어서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날 여행 마지막 일정은 경주에서 유명한 곡물칼국수 먹는 일입니다.

 

10여년전에는 이 집에서 칼국수 한 그릇 얻어먹을려면 대기표 끊고 한참을 기다려야 했었는데

요즘은 주변에 워낙 많은 먹거리집과 유사한 칼국수집들도 많아서 그 세가 많이 죽었군요~

 

당시에 기다리느라 원하는 만큼 먹지 못했었던 설움을 오늘 풀어봅니다.

 

 

 

이 집 칼국수의 특징은 국물입니다.

대체로 칼국수집들이 면으로 차별화하는 것에 비하면 특이합니다.

 

우선 보기에도 국물이 상당히 진해 보이지않나요~

국물에 10가지 이상의 곡물가루가 들어간답니다.

그래서 면은 남기더라도 국물은 남기지말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하도 자랑을 하시길래 어떤 곡물이 들어가냐고 물으니

자신은 서빙만 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은 모른다하시네요

그러면 자랑은 왜 하시나요..ㅎ

 

 

 

 

 

 

국물을 남기지 말라하셨지만

우리는 면이고 국물이고 한방울도 남기지 않고 싹싹 비웠습니다.

 

아주 건강한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