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서 봄소식이 들려오는데
난 아직 봄을 느끼지 못한다.
의도적으로 봄꽃을 보고 봄노래를 불러보지만
내 눈에는 아직..봄이 보이질 않는다.
봄은 나에게 희망의 상징이다. 그래서 난, 반드시 봄을 만나야 한다.
몇 주만에 일없는 주말을 맞이하여,
이미 만개한 벚꽃길로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봄기운이라도 만나볼까 계획했더니
아침부터 비가온다.
다시 거실한구석에 주저앉아 티비를 켠다.
봄을 느낄만한 영화를 이리저리 검색해보지만
뭐니뭐니해도 진행형 봄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그래도 '사랑후에 남겨진 것들'이라는 생각에 다시한번 결재를 한다.
이전에도 좋은 감정으로 보긴 했었지만,
도리스 되리의 일본에 대한 지나친 경외심이 마음에 걸려서 영화의 본 주제를 잠시 외면했었던 영화였다.
그래도 일본의 봄풍경 특히 봄의 상징 벚꽃을 가장 오랜시간 아름다운 모습으로 담고있다는 점에서
탄력잃은 나의 감성에 약간이라도 도움이 될까하여 재생버튼을 누른다.
내가 보고싶어했던 벚꽃하나미 장면으로 바로 들어간다.
우에노 공원의 체리블라썸 하나미에서 사람들은
'가장 아름다운 덧없음의 상징'인 벚꽃이 하루밤새 떨어져 사라질 것을 아쉬워하면서 밤새 열광한다.
내가 이전에 놓쳤던 주제, '덧없음' '허무'
그리고 다시보니 원제도 'kirchebluten' (u위에 ¨), 영어로 'cherry blossoms-hanami'이다.
언제나 느끼지만
아무리 아름다운 번안이라 할지라도 원제를 능가하는 부제는 없다는 생각을 또 한번 한다.
처음부터 저랬어야 했는데..
독일 바이에른 지역의 소도시에서 기차의 나라 국민답게 기차시간에 맞추어 하루를 정확하게 자로 잰듯이 흐트러짐없이
근면성실하게 평생을 살아온 루디와 그의 아내 전업주부 트루디.
트루디 그녀의 평생의 버킷리스트중 하나는 일본에 가보는 것이다. 남편과 벚꽃과 후지산을 함께 보는 것.
그것이 그녀의 평생의 꿈이었다.
남편없이 혼자 뭔가를 한다는 것은 생각도 해본적이 없는 트루디 앞에서 의사가 설명을 한다.
'남편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고..남아있는 시간동안 뭔가를 같이할 수 있는 일들을 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심정이 미어지지만 차마 남편에게 알리지 못하고 혼자 이 아픈 상황을 가슴 깊이 꽁꽁 감싸안고는 남편을 구슬린다.
남편이 살아있을 때 함께 일본의 벚꽃과 후지산을 보면서 마지막 추억을 만들고 싶은 트루디는 일본여행을 제안하지만
남편은 아내의 마음도 모른 채, 후지산도 그저 산일뿐이라며 제안을 외면한다.
일본은 못갈지라도 국내에 있는 자식들과는 이별의 시간을 만들어 주어야하므로
자식들이 나가 있는 베를린까지 노부부가 움직인다.
그러나 이미 성인이 된 자녀들은 젊은 날 아빠처럼 각자 자신들의 삶과 일상에 쫓기어
노부모를 따뜻하게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질 못하다.
이런 저런 이유와 핑계로 노부모를 귀찮아하는 티를 팍팍 내는 자식들..
부모들은 자신들의 젊은 날을 자식들의 양육과 교육을 위하여 희생해왔지만
정작 셋이나 되는 자녀 중 그 어느 누구도 노부모의 서울 나들이를 안내해 줄 아량이 있는 놈은 한 놈도 없다.
이렇게 부모 세대는 자녀세대로부터 밀려나면서
서서히 이 세상으로부터도 초속 5센티미터 속도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이 또한 '허무'
그나저나
혼자서 아픔을 감싸안고 있던 와이프가 여행길에서 죽음을 눈 앞에 둔 남편을 두고는 오히려 먼저 죽음을 맞이한다.
삶의 아이러니.
아내의 장례를 치른 후 루디는
아내가 그토록 원하던 것을 해주지 못했음을 후회하면서 혼자..
아니
아내(의 영혼, 그림자 혹은 추억이라해도 좋다)와 함께 일본으로 향한다.
일본에서 주재원근무를 하는 막내 아들 카알 역시
베를린의 형누나와 마찬가지로
혼자 남은 아버지 걱정보다는 아버지가 자신의 삶에 부담이 될 것을 먼저 걱정한다. 물론 일부는
늙은이에 대한 걱정과 엄마에 대한 그리움도 약간 섞여있긴하겠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표현은 이기적이다. 부모의 상처는 안중에도 없다.
어릴때 그렇게 헌신적으로 키웠던 사랑스럽고 착하던 자식들이 어쩌면 이렇게도 이기적으로 변했는지
영원히 착한 아들로 남아있기를 바라는 것도 어쩌면 부모세대의 이기심이고 욕심일까?
최근에 모방송국 드라마 '그래, 그런거야'에서 부모의 자식에 대해 느끼는 배신감에 대해 작가 김수현은
자식을 먼 친척 조카정도로 생각하면 그런 배신감에서 벗어날 수 있다라고 해결책을 제시해주기도 했지만
아무리 그렇게 생각하려고 해도 변해가는 자식들의 모습을 보는 것 역시 허무이다.
실제로 이 영화에서도 자식보다 남이 더 낫다는 교훈을 주기도 하지만..
그것역시 아이러니이기도 하지만,
노부부가 가장 필요로 할 때 그리고 가장 마지막까지 곁에 있어준 이들은 자식들이 아니라 오히려 타인이었다.
베를린에서는 레즈비언 딸의 여자친구가 엄마의 동행이 되어주고 마지막 장례미사를 챙기고 남은 아버지를 위로하더니,
동경에서는 아무 연고도 없는 남의나라 어린 길거리 댄서가 아버지의 친구가 되고 가이드가 되어 마지막 임종을 지킨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우리의 모든 삶이 그렇게 허무하다.
이런 덧없음 앞에서 죽은 아내가 더욱 더 그립다.
왜 진즉 함께 오지 못했을까?
아내가 살아있는 동안은 그 동행이 영원할 것이라고..
시간이 많이 남아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그래서 나중에 언젠가는 아내와 함께 여행할 날이 있겠지라고 생각했는데..
우리는 우리의 동반자가
우리에게 소중한 누군가가 언제나 내 곁에서 나와함께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삶은 아름다운 봄날 떨어지는 벚꽃잎처럼 언제 어느 순간에 사라질지 모른다.
만약 지금 누군가에게 내가 필요하다면
내일로 미루지 말아야하는 것이 우리의 삶이 아닌가..
오늘은 내 남은 날의 첫날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내 살아온 날의 마지막 날이 될 수도 있으니..
지금 나는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로 미루고 있는 일은 없는가??
일본의 대표적 시즌 축제인 벚꽃하나미와 일본의 현대무용중 한 장르인 부토를 결합하여
나고 죽는 것의 덧없음과 허무를 표현한 '체리 블라썸 하나미'
우리가 맞닥뜨려야 하는 삶의 어두운 실체와는 달리, 우리 삶의 배경이 되는 자연은 너무나 아름답다.
그 또한 우리가 극복해야 할 삶의 아이러니이다.
그래서 더 허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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