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3. 11(목). 오전
오늘은 홋카이도 근대사 및 개척사를 이해하기 위한 일정이다.
먼저 홋카이도 구청사부터 방문한다.
청사는 네오 바로코 양식의 빨간 벽돌집으로 멋을 내고 있다.
신청사는 그 뒤쪽 회색건물이란다.
홋카이도는 1868년 메이지 유신 이후
이 지역 토착민 아이누 족으로부터 이 땅을 찬탈하여 자기들 땅으로 영입한다.
본인들 위주의 역사서 '일본사기'에 이미 7세기 경에 이 땅을 원정했다는 기록을 근거로
이전부터 자기들 땅이라고 주장했었겠지~
홋카이도를 상징하는 건물마다 별모양 상징이 붙어있는 것을 본다.
그 원형이 북두성에서 출발했음을 보여준다.
1층의 홋카이도 철도의 역사관이 있어서 들어갔더니
한켠에 '북방영토반환 요구 서명부'라는 서류가 놓여있고
일부 방문객들이 그 명부에 서명을 하고 있다.
2016년 7월말 현재 서명자수 88,143,110명 이라는 숫자가 적혀있다.
순간적으로
이 지역의 원주민들이 이제야 자의식이 생기면서
일본인에게 빼앗겼던 자신들의 영토를 돌려달라는 반환운동을 하는 것인가?
어쩌지 나도 하나 해줄까..생각하다가
그래도 좀 알아보고 하자 싶어서 그냥 통과한다.
잠시 후,
청사에 함께 들어온 타 여행사 가이드에게 궁금증을 물었다. 저 서명 명부는 무엇인지?
내가 서명할 뻔 했다 하니..
절대 서명하면 안된다고 펄~~쩍 뛴다.
그들이 반환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북방영토란
현재 러시아 영토로 되어 있는 쿠릴 열도 4개의 섬을 말한다.
원래 포츠머스 조약에서 사할린 남부지역과 쿠릴 열도가 모두 자기들거였는데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제 2차 세계대전에서 패전하면서
러일 조약에서 본인들이 쿠릴 열도를 포기한다고 서명해놓고는
최근 들어서 다시
우리는 억울하다. 그 때는 상황이 불리했다.
그리고 원래 쿠릴 반도 중 북해도에 인접해 있는 4개의 섬은 원래 일본 고유의 것이어서
그 조약하고는 무관하니 다시 반환하라..라는 무리한 주장을 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걸 보니 정신이 번쩍 든다.
이놈들은
중국하고도 땅 싸움, 러시아하고도 땅 싸움, 우리 땅도 지들꺼
도대체 조금이라도 걸리는 것이 있으면
무조건 자기네 땅이란다. 아베의 우경화가 심각하다.
지금 우리가 잠시나마 정신줄 놓으면 독도뿐만 아니라
우리땅 전부가 한 때 지네들이 지배했던 땅이라 하면서 다 내놔라 할 집단이다.
제 2차 세계대전 종전시
미국이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원자폭탄 투하를 결정할 때
투하를 결정하게 된 상황이나 이유 등에 대한 비밀문서가 있는데
지금은 봉인해제된 그 비밀문서에서 밝히고 있는 사실 중에 놀라운 사실 하나는
그 어마무시한 핵폭탄 투하를 결정한 논리가 정치적인 이유나 전략적 이유가 아닌
단지 핵폭탄의 위력을 알아보기 위한 실험적 투하였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 이유만큼이나 더 놀라운 사실은 그 실험 대상을 일본으로 삼은 이유이다.
이유인즉슨,
'일본은 본질적으로 민족성이 악하고 포기를 모르는 인간들'이기 때문이라는 것.
이유가 너무나 비논리적이라는 사실 때문에 나는 매우 놀랐다.
그러나, 그 사실을 들을 때는
그런 비이성적인 이유로 그런 엄청난 결정을 하다니..생각되었지만
이번 홋카이도 구청사 방문을 통하여 아베 정부가 하는 짓을 보니
당시 미국의 그런 결정이 감정적으로는 충분히 공감이 갔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또 다시 나라 뺏기지 말라는 법 없겠다싶다.
우리는 다행히 우리의 언어가 있어서
우리의 독자적인 역사를 증명하고
그들의 만행을 기록으로 남겨서 끝까지 우리를 지킬 수 있었지만..
이 땅의 원주민이었던 아이누족이 일본에 흔적도 없이 흡수 통합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자신들의 언어는 있었으나 문자가 없었다는 것이 큰 요인이었던 것 같다.
현재 사용되고 있는 훗카이도 지역의 지명들 예를 들어, 삿포로, 비에이, 오타루 등등은
과거 아이누족들이 사용하던 소리언어이긴 한데 의미는 거의 모른단다.
현재 표기되고 있는 한자어는 그저 소리나는 대로 적었을 뿐이란다.
그나마 소리음으로라도 이 지역의 지명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은
위의 남자 덕분이라고 저렇게 홍보를 하고 난리다.
이 지역을 몇년간 돌면서 일일이 아이누 지명을 기록으로 남겼단다.
그게 뭣이라고 ..
그가 아이누족의 신도 아니고 저렇게 표현할 이유가 무엇인가
찜찜한 마음으로 2층으로 올라가니
복도벽에 몇개의 그림들이 붙어있다. 내용들을 보니 훗카이도 개척사를 기록한 그림이다.
명치 5년(1872년)에 개척사 10년 계획을 세우고
이로부터 개척사업이 본격적으로 추진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사업에서는 선진 지식과 기술을 도입하고자 하여
특히 미국의 도시계획 전문가들을 초빙하여 그들의 자문하에 도시계획의 기본 방침을 정하였다는
뭐 대충 그런 이야기가 적혀있다.
말하자면
홋카이도 도시 계획 및 도시 개발은 미국인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삿뽀로의 도로는 바둑판 모양으로 반듯반듯하게 설계되어 있으며
도로명도 미국의 애비뉴와 스트리트에 해당되는
남O와 서O로 표기되어 있어서
이 도시에 처음 온 사람도 그 표시만 기억하면
길찾기는 누워서 떡먹기만큼 쉽게 되어 있다.
벼농사의 도입과정에 대한 이야기인가 싶고..
도로개통을 위한 측량 작업 및 모든 공사도 미국인 기사의 지휘하에 이루어졌고
철도가 처음으로 오타루까지 성공적으로 개통되면서 산업발전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고
이주민들도 쉽게 들어오게 되었단다. 뭐 그런 이야기..
홋카이도 개척사에서 뻬놓을 수 없는 중요한 아메리카인 중 한 사람, 윌리암 스미스 클라크.
삿뽀로 대학의 전신인 삿뽀로농업학교를 열고 홋카이도 농업의 기반을 다져 준 사람.
그는 한국사람에게도 유명한 사람이다.
그 사람을 직접 알지는 못해도 그가 한 말은 모두가 다 안다.
'boys, be ambitious~!!'
윌리암 스미스 클라크, 그가 했던 말이다.
위의 그림이 나타내고 있는 저 날 아침에 즉, 임무를 끝내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날 아침
개척지에 남겨진 이국의 청년들에게 꿈과 야망을 심어주기 위하여 저 유명한 말을 남겼단다.
남의 나라 젊은이에게 한 말이긴 하지만
참!! 멋있다.
홋카이도의 히스토리 속에 토착민 아이누족에 대한 이야기는 흔적조차 없이 말살되었다.
들리는 이야기에 의하면
그들이 이 땅을 침략하는 과정에 토착민의 흔적을 철저히 말살했다고 들었다.
마치 백인 잉글랜드인이 아메리카에 들어가면서 토착민 인디언들을 무참히 말살하고 그 땅을 약탈했듯이..
아마도 이 땅의 개척과정에
미국인을 불러 들였던 것도 불과 100여년 전 그들과 똑 같은 역사를 가지고 있어서
최고의 노하우를 전수할 수 있는 집단이라 생각했었던 것 같고
미국 또한 비슷한 상황에서 축적된 노하우가 있으니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을 것이고..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위의 윌리엄 스미스 클라크도 개인적으로는 책임감이나 책무성이 강한 멋진 사람이지만
정치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그저 멋있다고 희희낙낙 팬심으로 대할 수 있는 것만은 아닌 듯 하다.
갑자기 마음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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