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딩노트 (2012)
Ending Note
8.9
일본의 전형적인 멜로 드라마인줄 알고 지인따라 쫄래쫄래 따라갔다가
졸지에 '죽음'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떠안게 되었던 영화이다
일본의 한 직장인이 정년을 앞두고 건강검진을 받는 과정에서 발견하게 되는 암판정
이미 4기이고 남은 여생은 길어봐야 1년이다.
죽음이라는 피해갈 수 없는 복병을 졸지에 맞딱뜨리게 된 주인공과 가족들은
우리네 정서와는 참 다른 방법으로 죽음을 맞이할 준비를 해간다.
주인공은 엔딩노트를 준비하여 자신이 죽기전에 해야할 to do list를 적어간다.
to do 1. 종교바꾸기
to do 2:: 자민당 아닌 다른 당 밀어줘보기
to do 3: 손녀들의 머슴노릇 해주기
to do 4: 가족들과 여행하기..
등등
..
그 과정을 그의 실수로 만들어졌다고 표현하는 사랑하는 막내딸이 따라다니며 기록한다.
실제로, 영화는 드라마가 아닌 다큐멘터리이다. 감독 스나다 마미가 자기 아버지를 따라 다니며
찍고 만든 아빠 이야기 그리고 가족이야기이다. 그래서 일부러 각색한 영화들처럼 극적인 반전은 없지만
시간과 시간사이에 잔잔한 감정들이 묻어있어서 예민한 사람들은 그것에 감동받고 눈시울 적실수 있는 그런 영화이다.
아뭏든 아버지가 죽음을 준비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제 3자인 관객들 역시 죽음을 어떤 개념으로 받아들이고 어떤 태도로 받아들여야 할지 한번 더 생각해 보게 한다.
영화속의 주인공이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는 참으로 의연하고 담담하다. 마지막까지 여유와 조크를 잃지않는다.
죽음은 생물학적 신체가 겪는 하나의 객관적 사실처럼 받아들인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상황과 죽음을 가지고도 주변을 웃게 만든다.
오히려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은 관객들이다. 한국의 관객들..
영화는 그닥 관객을 슬프게 만드는 감정의 소용돌이같은 것은 없다. 그럼에도 영화를 보는내내 주변에서 훌쩍이는 소리들이 끊임없이 들려온다
정작 죽음을 직면하고 있는 당사자는 자신의 죽음앞에 의연한데
왜 우리한국의 관객들은 남의 죽음앞에서 이토록 슬퍼할까. 여기서도 정인 많은 한국인들의 특성이 반영된 것일까
죽음을 바라보는 관점에는 크게 세가지가 있다고 한다.
나의 죽음, 너의 죽음, 그의 죽음.
이 죽음의 유형은 실제로 주체를 중심으로 구분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을 바라보는 심리적 유형에 따라 나누어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이 바라보는 자신의 죽음은 실제로는 '나의 죽음'이지만 자신의 죽음을 바라보는 그의 심리적 유형은 '그의 죽음'처럼 보고 있다.
즉, 그는 죽음을 '나'라는 주체의 죽음으로 보기보다는 생물학적 존재인 '인간'의 죽음으로 본다.
나를 생물학적 존재인 인간으로 바라볼 때, 죽음도 한 생물학적 존재인 '그의 죽음'으로 객관화해서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죽음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될 때, 그 죽음으로 해서 내가 슬퍼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 반면에 남의 죽음앞에서 정작 당사자보다 더 많이 슬퍼하고 더 많이 울어주는 우리 관객들의 정서는 또 무엇일까
우리네 정서는 죽음을 '객관적인 생물학적 현상'으로보기보다는 '관계의 측면'에서 죽음을 보는 것이 아닌가 싶다.
즉, 죽음이란 지금까지 나와 너, 나와 그 즉, 내가 포함된 우리가 맺어오던 관계가 끝나는 사회적 현상으로 봄으로써
나의 죽음이던, 너의 죽음이던, 그의 죽음이던 그 모든 관계속에 내가 포함되어 있으므로 모든 죽음을 나의 슬픔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 관객들이 주인공의 마지막 가는 길에 슬퍼서 흑흑거리고 있을 때
영화속 주인공과 주인공의 가족들은 떠나는 사람과 남아있는 사람들을 위한 마지막 정리들을 하나씩 하나씩 해 나가고 있다.
자신이 보아야 할 사람을 보고,시간을 함께 나누어야 할 사람들과 시간을 나누면서 이별을 준비한다.
그리고 감사해야 할 사람에게 마지막 감사 메시지를 보내고, 장례식장에 불러야 할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리스트까지
꼼꼼히 작성하여 마지막 순간까지도 가까이 지냈던 사람들에게 한 점 오점과 결례를 남기지 않도록 체크한다.
마지막 자신이 이 세상에 온 흔적들인 어린 세 손녀들에게 이 순간에 함께 있어 줘서 고맙다는 인사말과 함께 작별을 고한다.
"오래오래 함께 있어줘서 고마워~ "
어린 손녀 조차 의연하게 받아들인다.
'죽음이란 책과 같아. 처음에는 두껍고 빳빳하던 책이 나중에는 낡고 얇은 책으로 변하는 것처럼 죽음도 그런거와 비슷한거 같애~'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면서 '죽음'이란 무엇이며, '잘 죽는다'는 것은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듯하다.
엔딩노트를 통하여 남겨진 시간동안 해야 할 일들을 미련없이 해 보는 것도 잘 죽는 방법 중 하나이겠지만 이 영화가 보여주는 가장 극적인 장면은,
현대사회에서 여러가지 복잡한 이유들로 온 가족이 가장의 임종을 다 지킬 수 없는 경우들이 허다하다는 사실을 상기할 때
이 주인공은 불과 생후 3개월밖에 되지 않은 그것도 몇 천 키로밖에 있는 미국에서 어린딸의 위험을 무럽쓰며 날아온 아들내외를 포함한
모든 직계가족들이 한 자리에서 함께 송별해주는 가운데서 눈을 감을 수 있었다는 점 아니었을까..
그 말은 잘 죽는다는 것은 잘 산다는 것과 연계선상에 있음을 보여준다.
즉, 죽음을 판정받은 이후에 그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지만 잘 죽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가 살아온 긴 삶의 한 여정속에 이미 '잘 죽음'이 포함되어 있는것이 아닐까..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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