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정에서 다시 나정 팻말있는 곳으로 돌아나오면
양산재 표시판이 나정과 90 도로 꺽어지는 방향으로 양산재를 안내하고 있습니다
들어가는 입구까지 아스팔트가 잘 닦여있고
양편으로는 한두개 단풍물이 든 벚나무가 가로수로 줄을 서 있고
그 옆으로는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가을 들판이 펼쳐져 있습니다
웅장하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해서 아담하지도 않은
일반적인 재실 건물로 보자면 나름 규모가 있어보이는 건물이 결코 비루하지 않습니다
바깥에서 볼 때,
'대덕문'이라는 편액이 붙어있는 대문이 긴 돌담 중간에 늠늠하게 자리잡고 있지요~
처음에 양산재가 무엇인가 했었습니다.
중국의 그 유명한 양산박하고 상관이 있나 생각하기도 하고..
그러나 그것이 아니고..
신라건국전 진한지역에는 고조선 유민들로 이루어진 6개 촌이 있었는데
이름하여 알천 양산촌, 돌산 고허촌, 취산 진지촌, 무산 대수촌, 금산 가리촌, 명활산 고야촌입니다.
각 촌은 촌장들이 있어 나누어 다스리고 있었는데..
어느날 돌산 고허촌장이 양산쪽을 바라보니
낮은 양산 언덕에서 이상한 광채가 나서 올라와보니
우물옆에 큰 빛이나는 알이 하나 있었으며, 그 알에서 사내아이가 나와서 데려다 키웠더니
그 기량이 하도 뛰어나서 나중에 임금으로 추대하게 된다는 이야기도 앞의 나정 전설에서 이미 나왔습니다.
신라 건국사에서
박혁거세를 임금으로 추대한 이 6부 촌장을 빼놓을 수는 없는 일이지요~
그 분들의 위패를 모신 곳이 바로 '양산재'라고 하는 군요
그것은 아마도 이 마을이 '양산'이라서 그렇게 붙인거 같군요~
6촌 중 '알천 양산'이라는 마을이 이 동네인가봅니다.
나중에 신라 3대 유리왕이 신라건국 공로를 영원히 기리기 위하여 6부촌장에게 각기 성을 내리게 되는데
이로부터 신라에 6개 성씨가 탄생되었고 이들이 각기 시조 성씨가 된답니다.
혹 이 성씨들이 경주를 본으로 하는 성씨가 되는건가요?
경주 이씨, 경주 최씨의 시조가 이로부터 출발하냐는 거지요?
그러면 손씨, 정씨, 배씨, 설씨도?
대덕문 이라는 대문 옆에 작은 쪽문이 하나 있습니다.
관리인이 드나드는 문인듯 합니다.
허락을 득하고는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처마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곳에는 아직도 노란 민들레가 생명을 이어가고 있고..
대덕문과 홍익문 사이에 좌우로 두개의 건물이 있는데
잠겨져 있으니 자세히 들여다보지는 않고 통과합니다.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문입니다.
출입은 오른쪽 쪽문으로만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입덕묘'라고 하는 건물이 보이는데 어떤 의미인지를 모르겠군요~
저 안에 위패가 모셔져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문이 굳게 잠겨져 있는 관계로 주변만 휑하니 훓고는 돌아나옵니다.
이 사당은 기원전 57년 나정에 모여서 박혁거세를 세상을 빛나게 세울 임금으로 추대한
6부촌장을 기리기 위하여 1970년에 건립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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