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블로깅을 하고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또는
간신히 흔적만 유지하고 있는 오랜 유적지를 찾아다니는 이런 행위가
지금 내가 살아가고 있는 내 현실의 삶에 어떤 의미를 주는 걸까요?
요즘은 도통 살아가는 의미를 찾기가 어려워 괴롭습니다.
내 삶에 책임을 져야하는데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것인지??
이 작은 사찰은 왜 굳이 이 순간 내앞에 나타났을까요?
부처님 앞에 가서 머리조아리고 겸손한 척 하면 답이라도 알려주실려나 들어가 봅니다.
요즘 능력좀 있다하는 사찰들은 다들 몸통불리기에 바쁜 세태에
이렇게 조그만 터자리에 욕심없이 아기자기 곱게 단장하고 있는 이런 사찰은 또 처음입니다.
그러나 대문을 들어서서 석등앞에 서는 순간,
단순히 작은 절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배포가 결코 만만한 절이 아닙니다.
남산자락을 이 작은 절의 앞 마당으로 다 안고 있습니다.
그렇다 해서 주눅들지도 않습니다.
이렇게 규모가 작으면 절이 산에 안겨있다는 느낌이 들어야 할 텐데
오히려 절이 저 큰 산을 이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대단합니다.
건축양식은 완전 현대식입니다.
스님 보필하는 보살님 설명에 의하면 이 건축은 10여년전에 신축되었다고 하지만
이 절터는 이미 신라시대부터 있었던 오래된 폐사지였다고 합니다.
워낙 절터의 기운이 강해서
많은 스님들이 그 기운을 이기지 못해 버리고 가신것을
전생에 신라의 공주였다는 계시를 받은 지금 주지스님이 이렇게 예쁘게 잘 가꾸어가고 계신답니다.
(믿거나 말거나 입니다. 이 말은 스님이 하신 말씀이 아니라 공양간 보살님의 말씀이십니다~^^)
그러나 믿어도 될 듯합니다ㅎ.
아뭏든 주지스님이 비구니 스님이라 그런지
사찰이 이렇게 아기자기 여성스럽군요.
수도자일지라도 타고나는 여성적 성향은 무시할 수가 없군요~
대웅전 올라가는 계단에 요렇게 앙팡진 냥이 한 녀석이 길목을 지키고 있습니다.
대웅전에는 석가불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협시보살을 두는 전형적인 배치를 하고 있는데
이곳의 석가불은 보물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오래된 부처님이라네요~
제가 보기에도 오늘날 제작된 부처님 같지는 않고
세월이 있어보입니다.
사이즈도 작고 약간은 등어리부분이 구부정한 것이
최근 제작은 아닌듯이 보입니다만 구체적 설명이 없으니 정확한 사연은 알수가 없습니다.
그렇다하더라도 부처님의 불력이 좋아서 부처님뵈러 오는 신도들이 많답니다.
그러고 보니 저의 걱정 중 큰 걱정하나가 보광사를 다녀온 이후 하나 해결되었네요~
정말 부처님의 영험때문인지 인과관계는 모르겠습니다만 전후관계는 확실합니다
예의상 부처님은 찍지 않았습니다.
참배를 하고 내려오니 보살님께서 당신의 고향에서 온 손님이라고 귀한 차를 내어주시네요~
여러가지 약재를 넣어서 손수 다리신 귀한 차입니다
몸에서 기운이 쑥~ 올라오는 느낌입니다 -()-
차를 마시며 주변 환경을 둘러보니 이 사찰이 참 멋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탁 트인 시야를 따라 눈길을 주면 신라인이 불국토를 꿈꾸었던 남산이 정원처럼 누워있고
따로 불사를 하지 않더라도 남산 곳곳에 마애석불이나 석탑들이 산재해있으니
이곳이 서방정토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석등도 예쁘고..
그것을 등에 업고 있는 아기 거북이도 앙증맞기 짝이없고..
좋은 기운 받고
좋은 말씀 잘 듣고 잘 쉬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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