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큼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접해보았을 책, 데이비드 호킨스의 '의식혁명(1995)'
흔히들 선지자들은 말한다. '모든 것은 마음에 있다'
과연, 마음이란 것이 있는 것인지..??
이 책은 이와 유사한 명제를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책이다.
데이빗 호킨스는 신체운동학, 카오스이론 그리고 비선형 동역학의 핵심개념인 끌개장 이론 등과 같은
고등물리이론으로
인간에게는 마음이 있으며 그 마음속에 담겨있는 생각의 수준은 그 에너지가 모두 다름을 증명한다.
이미 오래전부터
교육학에서는 인간이 사용하는 언어의 에너지장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교사나 성인들이 아이들에게 무심코 내뱉는 언어와 표정 등에서
부정적 언어는 부적 에너지로 긍정적 언어는 긍정적 에너지로 아이들에게 전달될 것이라는 점에서
단순한 하나의 과학적 가설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는 없었다.
그 가설을 증명하기 위하여 모 방송에서 흰쌀밥을 가지고 실험을 하였다.
두개의 빈 병에 한 솥에서 나온 흰쌀밥을 각각 담고 똑같은 환경적 조건에 각각 배치하였다.
다만, 지나가는 사람들로 하여금
병1에게는 '사랑해' '고마워' 등의 말을 하게 하고,
병2에게는 이유도없이 그냥 '미워' '싫어' 등의 말을 하게 하였다.
한달 후,
같은 밥솥에서 나왔던 형제밥은 서로 완전히 다른 형태의 모습을 가지고 나타났다.
'사랑해' '고마워'라는 말을 듣고 기다렸던 병1은 곰팡이는 피었으나 눈송이처럼 하얀 곰팡이로
아름답게 변해있었고
'미워' '싫어'라는 말을 들으며 기다렸던 병2는 시커먼 곰팡이로 뒤덮힌 채 흉물스런 모습으로 공개되었다.
이런 실험은 물을 가지고 할 때나,
식물을 가지고 하더라도 일관성있게 나타난다.
예쁜 말을 듣고 일정한 시간을 보낸 물은 육각수로 가득한 생수형태로 그리고 꽃은 꽃봉오리와 잎과 줄기가 무성하게
자란 반면, 미운 말을 듣고 일정한 시간을 보낸 물과 꽃은 그 반대의 결과로 나타났다.
물은 모든 각이 파괴된 채로, 식물은 잎과 줄기와 봉오리가 모두 비루한 모습으로.
이런 현상은 음악을 들려주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음악을 들려주면 병의 물이 육각수 형태의 결정체를 유지하는 반면,
어떤 류의 음악을 들려주면 물의 육각수가 낱낱이 파괴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결과들을 보면서
신기해한 적도 있었다.
이런 실험들은 눈에 보이지는 않으나 모든 물질속에는 에너지장이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준 사례라 볼 수 있다.
데이빗 호킨스의 '의식혁명'은 이와 유사하게
사람의 생각이나 의식에도 에너지장이 있으며
그것은 근파워로 증명된다는 가설을 고등물리이론으로 설명하고 증명하고 있다.
더 나아가서는
모든 물질에 에너지장이 있을뿐만 아니라 그것들의 수준을 수치화할 수 있다는 점과
그 수치적 척도를 이용한 '의식지도'까지 제시해준다는 점에서 혁명적인 책이라 할 수 있다.
의식지도에서 제시되는 수치는
단순한 물질의 존재의 값인 1에서부터 보통의식의 절정인 600,
그리고 깨달음의 앞선상태들을 포함해서 1000에 이르기까지 분포한다.
여기서 우리가 주의깊게 들여다보아야 할 내용은
의식척도에서 임계적 반응점은 200수준이라는 점이다.
즉, 최소한의 자기 삶을 주도적으로 살기 위해서는 200수준 정도의 끌개장을 가진 의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용기 즉, 힘이다.
그가 제시한 의식지도에서
200수준이하의 의식은 죄의식, 죄책감, 무력감, 비애, 두려움, 욕망, 분노,자존심 등이다.
이런 수준에 있는 사람들의 눈에 세상은 희망없고, 슬프고 , 겁나고 좌절을 안겨주는 곳으로 보인다.
그러나 200수준의 끌개장을 가진 힘과 용기를 얻게 되면 그 다음부터 삶은
흥분을 불러일으키는 살만한 것이자 도전적이고 자극적인 것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200~600수준 사이에 중용, 자발성, 수용, 이성, 사랑, 기쁨, 평화 등이 있다.
한 눈에 봐도 우리의 마음이 이런 의식들로 가득차 있다면 우리의 삶을 행복할 것이란 걸 알 수 있다.
600수준을 지나고 영적 깨달음의 상태가 될 때 에너지 장은 700~1000수준이 된다.
600이상의 수준은 일반인들의 경우 노력한다고 도달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런것은 중요치 않다.
이 '의식지도'에서
내가 눈여겨보는 부분은 200수준 이하의 의식도 아니고 200수준 이상의 고차원적 의식도 아닌 바로
'자존심의 위치이다.
비루한 인간이 살아가면서 버리지 못하고 끝내 짊어지고 가면서 스스로 힘들어하는 자기 십자가 중 하나인
'자존심'
이 자존심은 200수준에 해당하는 용기에 도달하기 바로 직전 단계의 의식이다.
이 위치가 갖는 의미가 나에게는 매우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즉, 인간은 자존심을 버리고 극복하는 순간
긍정적 에너지의 힘을 얻게 된다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깨닫게 한다.
가끔 별 가당치도 않은 자존심하나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사람과 갈등을 겪기도하고
다른 사람뿐만 아니라 나 스스로를 올가미에 가두어서 힘들게 하는지를 하는지를 생각해보면
이 의식지도는 정말이지 나를 돌아다 볼 때 어디를 봐야하는지를 짚어주는 아주 제대로된 맵이 아닌가.
몇년 전 읽었던 책이었으나
그 때는 단지 의식을 물리학적으로 수치화한 연구물이구나 정도로 생각했었지
그 내면에 담고 있는 파워를 발견하는 눈이 없었더랬다.
일반적으로 수행자도 아니고 그닥 착하지도 않은 평범한 소시민인 우리들이
좀 더 긍정적이고 자발적이고 힘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하여 용기를 내기전에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찌질한 우리의 자화상인 '자존심'을 버리는 일임을 이번 리딩에서 새롭게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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