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reading/영화읽기

광복절 기념 영화보기 '덩케르크' & '택시운전사'

노코미스 2017. 8. 17. 11:57

 

 

 

 

광복절 기념영화보기라고 네이밍하였지만

사실 '덩케르크'는 그런것하고는 아무 상관없이 본 영화이다.

 

다만,

'덩케르크'가 세계 제 2차 대전을 다룬 영화이고

제 2차 세계대전이 한국과 직접적으로는 관련된 사건은 아니지만

사실상 한국의 광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사건이므로 그렇게 의미부여를 해 보았다.

 

나는 원래 전쟁영화 자체를 좋아하지 않는터라

'덩케르크'가 단순히 때리고 부시고 하는 전쟁영화였다면 관심이 없었을터인데

사람들 말이 이는 좀 다른 형태의 전쟁영화라고 하니 슬그머니 호기심이 생겼다.

 

보고 난 후 나의 소감은

 "도대체 크리스토퍼 놀란이란 감독은 어떤 사람이야?"

라는 의문문으로 대체되었다.

 

크리스토퍼 놀란,

그의 이름은 몇년전부터 내 귀에 들려오긴 했었지만

애써 그를 알려고 노력하지는 않았었다.

 

영화는 배우가 아닌 감독의 작품이라고 아는 '척' 떠들기도 했지만

사실 내가 영화를 선택하는 방식은 방송과 주변인의 추천제이고, 영화를 기억하는 방식은 배우가 우선이다.

어쩌다가 감독이름을 듣는다하더라도 작품이랑 감독을 매칭하여 기억하는 작품은 많지 않다.

 

크리스토퍼 놀란이란 이름역시 제법 들어왔던 이름이지만

그의 작품들을 그의 이름에 연결하여 기억하려는 생각은 그다지 없었던 거 같다.

 

덩케르크 이후에 그의 작품을 찾아보니 거의 내가 본 작품들이다.

내 영화인생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탑에 속하는 영화들 중 3가지,

메멘토, 다크나이트 라이즈, 인터스텔라가 그의 작품이었다.

 

메멘토를 처음 접했을 때도

이번 덩케르크를 보았을 때처럼 나의 느낌은 의문문으로 대체되었었다. 

"와~, 도대체 이 영화를 만든 사람이 누구지? 저 플롯 풀어나갈려면 엄청 머리좋아야 할텐데.."

 

딱 거기까지였었다.

그 멋진 영화를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데 까지..ㅎ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하여 다음행동을 취해야 하는데 원래 나라는 사람의 본질이 그것이다. 그런 허점.

 

아뭏든 '다크나이트 라이즈'를 보면서도

감독이름을 들은것 같긴한데, 히스레저한테 빠져서 허우적 대다가

놀란이라는 사람은 '지나가는 사람 1' 이 되어버렸다.

 

'인터스텔라'를 보면서

그렇게 어려운 최신식의 수학적 과학적 개념들을

어떻게 저렇게 영화로 쉽게 풀어낼 수 있지? 저 대본 쓴 사람 천재아냐?

이 때는 대본을 누가 썼을까..궁금해했었지, 감독을 궁금해하지는 않았다.

물론 이 때도 궁금해하는데까지만.;;

 

근데 알고보니 이 집에서는 형제가족들끼리 다해먹는다는 거구만.

인터스텔라 시나리오는 감독의 동생 조나단 놀란이 쓴 거라는데..

아뭏든 그때그때 잠시만 시간을 내었다면 알 수 있었을 크리스토퍼 놀란의 실체였지만

나의 맹함으로 인하여 이제에 와서야 '크리스토퍼 놀란'그의 실체를 알게 된다.

나이도 어린데다 잘 생기기까지 게다가 관점까지 섹시해~(도대체 부족한게 뭐야?)

 

 

이번 작품은 홍보단계에서부터 '크리스토퍼 놀란'의 작품이라는 걸 워낙 강조하다보니

그의 작품이란 걸 알고 보았다. 보고나니, 그의 진가가 느껴졌다.

특히,

'택시운전사'를 보고나니

'덩케르크'를 연출한 크리스토퍼 놀란의 진가가 더욱 크게 와 닿는다.

 

 

 

내가 영화를 평가하는 기준을 들이낼 만한 전문가가 아니라서 뭐라고 표현은 할 수 없으나

아뭏든 이 영화가 참 좋다.

 

역사는 해석이라 하였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전쟁을 승리와 패배, 영웅과 낙오자로 해석한다. 

그러나 놀란은 오히려 2차 세계대전중의 가장 어려웠던 덩케르크탈출작전을 싸움이 아닌 생존드라마로 해석한다.

현상을 해석하는 그의 남다른 시각이 마음에 든다. 지금까지 보아왔던 그의 영화들을 보니 이제야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겠다.

그는 전쟁과 악이 없는 좋은 세상을 꿈꾸는 야심찬 드리머이다.

그리고 그러한 세상을 만들어가는데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잘 실천하는 사람이다.

 

그의 영화가 좋은 것은 원칙적이지만 고리타분하지 않다는 것이다. 

원칙적이라는 의미는 편법을 쓰지 않고 정공법을 쓴다는 것,

요령부리지 않고 열심히 찍는 것

그러면서 좋은 영화 만들려 애쓰는 것 등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근래 우리나라 영화들이 잘 만들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나는 양에 차지 않는다. 이유는

잘 만들었다고 소문난 영화들일수록 인스탄트냄새가 난다.

 

주제불문, 장르불문, 감독불문

혹여나 영화적 취향이 서로 다를 관객들을 위하여 얼마나 많은 배려를 하는지..

모든 영화에 들어가는 조미료가 비슷비슷하다. 코메디 요소 한 스푼, 액션 신 한 스푼, 신파적 감동 한방울. 또는 여배우 우려먹기 등

내가 보기에는 관걕모으기 위한 요령으로 보인다. 좀 더 정공법으로 팬심을 확보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나의 바램이다.

 

 

 

놀란의 영화는 자기 손맛이 있다. 거장의 손맛.

재료가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맛들 중에서 가장 좋은 맛을 골라내는 안목도 남다르지만

맛의 본질을 유지하면서 색다른 음식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사용하는 여러 재료들의 활용법도 남다르다.

예를 들면 이번 영화에서 사건을 나열하는 방식도 참 남달랐다.

각기 다른 시점에서 일어났던 각각의 스토리들 즉, 

지상에서의 한주, 해상에서의 하루, 상공에서의 한시간을 하나의 스토리로 수렴하는 방식은 가히 수학적이고 예술적이다.

 

어떤이들은 놀란 작품중에서 가장 지루한 작품이라고 말하지만

생과 사가 초를 다투는데 지루할 틈이 어디 있던가?

한스 짐머의 음악으로 시종일관 관객들의 심장을 두드리고 있는데..

 

 

덩케르크와 도버해협간에는 약 75km정도의 거리라고 한다.

국가에서도 그들을 구하라고 말하고

날만 좋으면 바로 건너다보이는 고향땅인데

적군의 폭탄과 어뢰 등 하늘과 땅, 바다에서 공격해오는 적군의 포화를 뚫고

덩케르크라고 하는 완전 고립된 해안으로부터 도버해협을 건너서 

집으로 돌아가는 일이 쉽지가 않다.

 

날아오는 포격과 아우성 치는 불바다속에서 그들의 최종목표는 '집으로 살아 돌아가는 것'이다.

"집으로 데려다 주세요"

 

 

 

어쨋든 리더(이 사람 계급이 어느정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영화에서는 이 상황의 최고지휘권자로 보인다)는

그 가능성없어보이는 상황에서 영국군 30,000명을 귀국시키가는 자국수상의 명령을 수행해내고

덩케르크 지역에 있던 연합군 포함 340,000명을 무사 귀환시킨다.

 

귀환용사들을 실은 마지막 배를 떠나보내며

궁지에 몰려있는 프랑스군을 돕기 위하여 혼자 남는 장군의 모습을 보면서 (실제로 그랬는지, 영화적 재구성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리고 그런 장군에 대한 진심어린 리스펙트를 보내는 부하장교의 눈빛을 보면서

진정한 리더쉽과 팔로우쉽의 정석을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뭉클하다.  

이런 장면들도 결코 인위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찍는 것이 놀란의 능력인것 같다.

 

 

과연

전쟁이 진행되고 있고 현재 우리를 지킬 수 있는 마지노선이 무너지고 있는 상황에서

살아서 고향으로 돌아온 군인들은 마냥 자유롭기만 할까?

 

불바다에서 간신히 살아돌아온 군인들에게

고향 사람들은 먹거리들을 준비하여 그들을 맞이해준다.

"고향으로 돌아온걸 축하하네"

"살아서 돌아온걸요"

"그것이면 충분하네"

놀란이 하고 싶었던 메세지의 결정체이다.

 

이렇게 군더더기 없는 영화를 본 다음 날,

광복절 기념일이고 해서 무언가 우리나라 영화 하나정도는 봐 줘야하지 않을까 생각되어

요즘 많이 회자되고 있고 국민평점도 높은(9.4라는 평점에 이끌려) '택시 운전사'를 보러 갔다.

 

 

 

한 마디로 나의 소감은,

'평점 9.4가 어떻게 나왔지?'이다.

 

나의 이 의문에는

연기자들의 연기 흠잡을 데 없고

소재 또한 우리가 알아야하고 보아야 할 마땅한 소재이고

전반적으로는 열심히 만들었다는 전제는 기본으로 깔려 있다.

 

허나 좀 냉혹하게

그러면서 열심히 만드시고 참여하신분들에 대한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면서 말씀드리자면

이 영화는 순전히 배우들과 5.18이라는 우리국민정서상 무시할 수 없는 소재의 권위에

빚진 바 크다라는 생각을 저버릴수가 없다. 말하자면 작품성보다는 작품외적 요소에 의한 평점이라는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떠올랐던 의문 몇가지로 내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설명하고자 한다.

 

첫째, 반드시 모든 영화가 오락성을 띄어야 하는가?

송강호가 연기를 진짜 잘하는 것 인정하지만 송강호의 그런 능력을 싸구려 오락거리로 더 이상 전락시키지 말았으면 좋겠다.

쉬리 이후 장르불문 주제불문 틔어나오는 그의 연극적 희극성은 이제 좀 식상하다. 내가 가장 좋은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는 송강호의 모습은

쉬리에서 본 모습이었다. 그 이후로 그는 맡은 역할에 따라 옷만 달라졌지 본질은 천편일률적인 송강호의 모습이 보인다.

난 오히려 작품마다 완급조절을 해 주는 유해진의 태도가 훨씬 좋아보인다.

 

그리고

아무리 외부인의 시선으로 보고, 당시 상황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한 소시민의 행태를 그렸다고는 하지만

구재수라는 대학생의 경우는 눈앞에서 내 이웃, 내 학우가 이유없이 죽어가는 비극적인 폭력현장을 지금 당장 당면하고 있는 인물인데

그 상황에서 웃음과 노래가 나올 수 있었을까? 꼭 이런 오락적인 요소가 들어가야 관객들이 좋아할거라 생각한 것인가?

그리고 감독은 이 배우들의 이런 역량들을 꼭 이 영화에서 다 울궈먹어야 했을까?

 

둘째, 사회적 인식이 없던 한 개인이 어느날 목도하게 되는 비극적인 현장을 통해서 인식에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 것은

개인이나 사회의 성장사에서 상당히 자연스러운 인과론이다. 그렇다하더라도 그것을 그렇게 과잉표현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렇게 '노머니 노광주'를 외치며 돈이 아니면 손님까지 버리고 가길 서슴치 않던 상당히 상식적인(or 현실적인)택시운전사가

하룻밤 사이에 두고온 손님때문에 눈물까지 지어짜가면서 후회하는 모습은 왠지 자연스럽질 못하다.

마치 그의 인식변화를 예민하게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까싶어 과잉표출로 감동을 유도한 것인가?

택시운전사가 손님을 버리고 혼자 서울 올라가면서 흥얼거리던 '제 3한강교'의 리듬이 저 가슴 밑바닥으로 자기도 모르게 가라앉을 때 

우리는 이미 그가 다시 돌아갈 것이란 걸 얼마든지 눈치 챌 수 있었다. 그만큼 송강호가 연기를 잘 했다.

괜히 눈물까지 짜내면서 영화를 신파로 만들어야 했나 하는 아쉬움이 너무나 크다. 

 

셋째, 마지막 추격신은 뭐지?

감독이 스스로 생각해도 뭔가 영화적 재미가 부족하다 생각했었나?

아무리 광주시내 택시기사님들의 활약을 강조하고 싶었어도 이건 아닌것 같다는..